◈서울대교구 법원리본당 갈곡리공소
32 신자가구 중 7가구 완전 침수ㆍ5가구 완파
논 밭 모두 자갈밭으로…올해 농사 이미 포기
영농자금 빚만 남아…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목숨만이라도 건진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재도구가 다 떠내려 가고 가옥이 파괴되는 수해였지만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32가구의 신자가구중 12가구가 완전침수되고 5가구가 완전 파괴되는 수해를 당하고도 인명피해를 보지 않은 것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는 서울대교구 법원리본당(주임=정세덕 신부) 관할 갈곡리공소.
수해가 몰아친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갈곡리공소 신자들은 군인들의 도움으로 유실됐던 하천제방을 다시 쌓는데 그치고 있을 뿐, 아직 수마가 할퀴고간 그 자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집이 완전히 허물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벼논에는 제방이 터져 밀려온 자갈과 흙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매일 150명씩, 지금까지 1,500여명의 군인들이 중장비와 함께 동원돼 제방의 물줄기를 잡긴 했지만 올해 농사는 단 한톨의 수확도 건질 수 없을 만큼 망쳤다는 갈곡리공소 조병현(베드로ㆍ65) 회장의 지적처럼 신자들은 겨우 내년농사를 위해 수해복구에 나서고 있을 정도.
8월 5일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3시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는 관측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인 520mm. 갈곡리공소의 그날밤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고 한다.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이 자녀들을 객지로 떠나 보내고 노인들만 살아가는 갈곡리 공소에 집중호우가 쏟아졌지만 이처럼 많은 비가 올 줄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였다.
『새벽 2시경에 동네 젊은이들이 찾아와 급하게 피신하라며 야단이었어요. 갑자기 불어난 하천물을 건널 수가 없게 되자 하천 앙편으로 줄을 쳐놓고 몸을 묶어 겨우 건넜습니다』
모든 가재도구를 떠내려 보내고 간신히 목숨만을 구한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아니었다면 불어난 물에 어쩔 수 떠내려 갔을 것이라며 그때의 악몽을 되살려 내기도.
갈곡리공소 신자들이 비로 입은 수해피해는 1만5천여 평의 논과 1만2천여 평의 밭이 완전 침수됐다.
순수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갈곡리공소 신자들로서는 이번 피해에 따른 재산상의 손실은 물론 막막한 앞날에 대한 정서적인 불안감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집전체가 모두 유실된 5가구 신자들은 현재 갈곡리공소 피정의 집에서 임시로 머물며 「어떻게 앞날을 헤쳐갈까」큰 근심에 빠져 있다.
『잘살아보겠다고 농협에서 많은 돈을 빌려 농사밑천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해로 금년농사를 완전히 망쳐 버려 이자는 커녕 당장 입에 풀칠도 못하게 됐습니다』
갈곡리공소 신자들에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모본당인 법원리 본당 관할 전체가 침수피해를 봤기 때문에 본당으로부터도 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법원리본당의 경우 갈곡리공소를 포함해 전체 7개 구역 중 6개 구역이 침수되는 상황이어서 당장 주일헌금과 교무금이 3분지 1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짓느라 교구에 진 빚은 고사하고 당장 본당 운영비도 충당하지 못할 형편이 정세덕 본당신부는 선후배신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호소하고 있을 정도로 딱한 처지가 됐다.
그래도 갈곡리공소 신자들은 이번 수해를 통해 신자로서 강한 유대감과 일치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수해가 있자마자 서울대교구 각 본당과 신자들이 찾아와 따뜻한 위로와 함께 많은 기도를 해 주고 갔기 때문이다.
갈곡리공소신자들은 신자들의 기도 때문인지 폭풍우 뒤에 다시 떠오른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비록 힘들고 지쳐 있는 상황이지만 내년을 기약하기 위한 노력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특별히 갈곡리공소는 서울대교구 최창무 주교를 비롯 김충수 신부, 최준웅 신부, 최영식 신부, 수원교구 고건선 신부, 부산교구 김남수 신부 등 7명의 사제, 그외 5명의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온상. 이번 수해로 최영식 신부의 어머님과 동생부부가 사는 생가도 극심한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수해로 고통받고 있는 갈곡리공소 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분은 법원리성당(전화 0348-958-5690)으로 연락하면 된다.
◈생활터전 잃은 화령성당 최명순(데레사)씨
가진 것은 없었지만 건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집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물에 떠내려가 완전 빈털터리가 됐다. 비록 남의 땅을 임대해 살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풍요로웠는데…
『어쩌다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2리(일명 무동마을)에 살고 있는 최명순(데레사ㆍ63)씨. 지난 8월 12일 경북 북부지역에 내린 게릴라성 폭우로 생활터전마저 잃은 그는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했다.
이번 수마(水魔)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예부터 봉황산 아래 마을을 형성, 조용히 농사지으며 삶을 일궈가던 주민들은 갑작스런 수해로 논밭이 모두 쓸려가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이다.
건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최씨는 가옥이 무너지고 세간살이들은 모두 물에 떠내려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됐다. 그래서 이들은 현재 친척이 비워둔 빈 집에서 남편 성삼봉(64)씨와 임시로 생활하고 있다. 식량ㆍ옷 등은 자식들이 보내준 것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의 8월 12일. 새벽부터 비가 심상찮게 내리더니 4시경에는 물이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이들은 미처 세간살이들을 옮길 엄두도 못내고 십자고상 하나만 들고 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삶의 모든 희망을 앗아가듯 허무하게 집이 무너져 내렸다.
최씨는 이곳에 태어난후 결혼해서 20여 년간을 부산에서 살았다. 고향을 떠난 이들 내외에게는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 성씨가 막노동을 하며 겨우 생활고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최씨도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쳤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들 내외는 7남매를 훌륭히 성장시켰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킨 95년, 최씨는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왔다. 그리고 비록 남의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지었지만 부부가 행복하게 사랑을 가꿔나갔다.
최씨는 본당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며 자신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헌신했다. 평소 어렵게 지내는 사람을 보면 그냥 있지 못하던 그는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참 행복을 맛보았다.
『주님께서 저희 부부 거둬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열심히 매달리면 반드시 들어주시리라 생각해요. 저는 이번 물난리 중에 목숨구한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동교구 화령본당 화송공소
신자 평균 70세 무의탁 노인
임대논밭마저 물속으로…생계 막막
신자 7가구중 6가구 가옥 전파
거주할 곳 없어 공소에 임시 대피
지난 8월 12일 경북 북부지역을 집중 강타한 폭우로 안동교구 화령본당(주임=박윤정 신부) 관할 화송공소 신자들이 큰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을 전체 여덟가구중 일곱가구가 신자촌을 형성해 살아가던 화송공소 신자들은 이번 수마(水魔)로 신자 가옥 여섯채가 전파됐다. 더구나 공소신자들은 수해당시 전기ㆍ전화가 불통되고 연결 도로가 모두 유실돼 사흘동안 고립된 상태로 지내야 했다.
공소신자 안영순(마리아)씨는 『계곡에서 밀려내려오는 물이 순식간에 집들을 덮쳤다』면서 『너무 무섭고 놀라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농사를 업으로 삼고 생활하던 공소신자들은 가옥과 함께 논ㆍ밭이 모두 침수돼 앞으로 생계마저 위협받게 됐다. 평균 연령이 칠십에 이르는 공소신자들은 현재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다행히 이번 수해에 피해를 입지 않은 화송공소에 대피해 있다.
이 소식을 접한 화령본당을 비롯한 인근 본당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ㆍ이번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화령본당도 주임신부 이하 모든 신자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쌀, 의류 등을 보냈고, 상주 계림동본당, 김천 대신동본당, 대구 약목본당 등에서도 구호물품이 답지하고 있다.
화령본당 박윤정 주임신부는 『화령본당 신자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어 공소신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며 『어렵게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교회차원 나아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하면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했다.
90여 년 역사의 화송공소는 예전에 신앙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생활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대로 신앙을 이어온 공소신자들은 대부분 남의 토지를 임대해 생계를 유지하던 영세 농민들이다. 당장 끼니 걱정이 앞서게 된 화송공소신자들은 앞으로 살아나갈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정부와 교회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을 희망했다.
화송공소 박상환(분도ㆍ58) 회장은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부분 의탁할 곳 없는 노인들인데…』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12일 폭우로 사제관 수녀원을 비롯해 성당 담장이 무너지는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은 화령본당은 현재 본당신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사제관, 수녀원 등은 거의 복구됐으나, 3천만 원 정도 경비가 들어가는 성당 담장의 경우 아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도움주실분=농협 743138-56-020831 박윤정
[르포] 수해현장을 가다
“목숨만이라도 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발행일1998-08-30 [제2117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