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주교구사 1~2권 발간은 조상들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단순히 사료만 묶어낸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삶을 후손된 입장에서 재조명해보는 작업을 거쳤다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낍니다』
4ㆍ6배판 크기로 각각 1,300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분량의 「전주교구사」 1권 및 2권을 최근 펴낸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 신부의 말이다.
『전주교구사를 전주사람이 펴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김신부는 『제 고장, 저희 조상, 저희들의 역사를 저희들의 손으로 썼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역사의 한 사건을 두고 이해하거나 해석하는데 그 지방민의 정서가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9월20일 한국순교자대축일을 기해 발간하는 「전주교구사」는 1784년부터 1997년 6월까지 총정리한 책으로 2백자 원고지 2만2천여매에 이른다. 1,320쪽의 1권은 한국천주교회사의 축소판으로 불릴만한 전주교구의 역사를 담은 「통사」이며 1,757쪽 분량의 2권은 「본당ㆍ기관ㆍ단체사」를 수록했다.
김신부는 『전주교구사 집필은 200주년이었던 1984년부터 시도됐지만 당시에는 교회사의 시대별 연구가 진행중이었고 단순한 과거 역사 정리만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돼 중단했다』고 말하고 『교구사 대신 5년에 걸쳐 정리ㆍ조사ㆍ답사작업으로 이뤄진 1882~1986년의 「교세보고서」와 박해시대 교우촌 500여 곳의 지명을 밝힌 「지명조사 보고서」를 간행했다』고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한다.
그후 1987년 전주 자치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다시 집필을 시작해 거의 완성단계에서 또 다시 중단됐다고 한다. 김신부는 『그 대신 간행된 1784~1992년의「전주교구사 연표」는 사건의 내용을 일일이 전거(典據)를 밝힌 것으로 한국교회사상 처음이었다』고 술회한다.
김신부는 책머리말에서 『1993년까지 한국교회사 전반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 교회사에 관한 직ㆍ간접적인 논저가 700여 편에 이르렀고, 전주교구 지역 교회사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정리돼있었던데 힘입어 역사를 정리해 낼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신부는 『교구사를 완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바로 순교자와 이 고장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다 가신 임들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1973년과 1980년, 죽음을 넘나드는 사고를 두 번씩이나 겪고서도 교구사를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그분들의 전구하심이있었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완전히 사망선고를 받았던 80년1월 연탄가스 사고로 지금까지도 앓고 있는 후유증을 생각하면 「전주교구사」 완간은 정말 기적같은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걸음마와 말하기, 글쓰기를 새로 시작하는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대작을 완성한 김신부였기에 하느님의 섭리로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특히 김신부는 집필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간 지난해 2월 교구문서고에서 일본어로 된 문서들이 발견돼 일제시대 교구역사를 보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순교자들께 감사드린다』고 한다.
『신앙의 유적지를 발로 걸어 답사하면서 조상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뜨겁게 끓어올랐고, 조상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삶이 보였다』는 김신부. 만 26년동안 심산궁곡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찾아다니며 증언을 채취하고 사료를 수집하고 교회사 강의, 자료정리, 집필로 일관해온 삶이다.
김신부는 『사료 하나와 쌀 한가마니를 맞바꾸기도 했으나 가진 것이 없어 아까운 자료를 구입하지 못했던 몇몇 사례들이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아쉽다』고 털어놓는다.
『문자로 쓰여진 사료에 의존한 역사 이해는 생명력이 부족하므로 조상들이 살았던 현장을 답사해야 했다』는 김신부는 『한국교회사를 안락한 의자에 앉아, 편안한 책상 놀음을 하며, 오늘의 지식과 사고(思考)의 잣대로 판단하고 해석해서는 안된 다』고 거듭 강조한다.
김신부는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웃마을 아이들이 신자마을 어린이들을 가 리켜「천주학쟁이 자식들」이라며 멸시했었다』며 『2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천대와 멸시, 가난과 고통은 지금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말을 이어간다.
무지몽매한 아낙네들까지 믿음하나 때문에 순교했다면 그 무언가 신앙의 바탕이 되는 근거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현장답사에 나선 김신부는 정읍본당 대숲골공소 구교우들을 통해 한국교회의 시편이라 불린 「천주가사」를 구하고는 자료수집의 수급함을 재삼 느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일제치하 때와 6ㆍ25사변 시기에 대한 심층연구가 필요하다』 고 말하는 김신부는 『우선 전주교구내 100년된 본당들의 본당사를 쓰는 일에 매진할 것』임을 밝혔다.
김신부는 『역사는 과거의 현재이면서 오늘의 현재요, 미래의 현재』라며 『교회사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교훈을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순교자성월에 만난 사람]「전주교구사 1ㆍ2」 낸 김진소 신부
“고난의 역사를 사신 임들의 덕택이죠”
지명조사보고서ㆍ연표에 이어 통사 완간 의미
“사료수집 시급…교구내 본당 1백년사에 매진”
발행일1998-09-20 [제2120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