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금강산 관광」이 우리나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을 하나의 축으로 시작된 북녘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명산중의 명산 금강산 관광이라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벌써 이달 안에 두 곳의 회사가 금강산으로 가는 배를 띄운다는 보도가 나왔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강산행 선박이 이미 선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주영 회장의 나머지 500여 두의 소떼가 방북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는 현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이 같은 결정들은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그것은 최근의 금강산을 다녀온, 아니 북녘 땅을 밟아본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의 금강산 관광은 너무 서두른 결론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그것이다.
어쨌거나 실향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그 금강산은 가곡처럼 그렇게 아름다웠다. 『누구의 주재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비록 가보진 못했어도 「그리운 금강산」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목이 메던 이유를 금강산을 보고나서야 알 수가 있었다.
웅장하면서도 조화롭고 오밀조밀하면서도 화려한 금강산의 자태는 산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이점을 다 가지고 있는 듯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경은 우리민족의 심성을 닮은 우리의 산,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한 달이면 40일은 비가 온다」는 금강산, 그래서 개인날 보다는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는 금강산은 아주 멀리 돌아서 찾아간 우리를 활짝 갠 얼굴로 반겨주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초록빛 나무들로 옷을 입은 금강산의 늦봄은 북한 땅을 밟으면서부터 긴장으로 일관된 우리 일행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다.
사실 금강산 행(行)은 우리 일행의 방북에 있어 「주제」(主題)가 아니라 「부제」(副題)에 해당되는 일정이었다. 사전 조율의 어려움으로 두 번의 시도 끝에 북한 땅으로 들어간 우리로서는 7박8일리라는 방북 기간 중 절반을 잘라먹는 금강산 일정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소상히 밝힐 수는 없지만 입북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북측 파트너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힘겨운 씨름을 거듭했다. 사목적 방문성격의 우리 측 방북입장과 어느 루트를 선택하든지 오직 한 가지, 정치적 입장으로 통일되는 북측 파트너들과의 만남에서 이 의견조율은 필연이었고 과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행된 금강산 행은 오히려 행운이었다. 평양에서 황해도 땅 곡산을 거쳐 강원도 원산까지(평양→원산=200km),원산에서 강원도 땅 통천을 경유 금강산이 있는 고성까지(원산→금강산=108km) 총 308km에 달하는 도로변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북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화가 없었으니 보았다는 표현이 걸맞는 이 과정을 통해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은 여과 없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75년형 벤츠 5대에 분승, 행렬을 이루며 지나가는 우리 모습은 차량이 별로 없는 한적한 거리에서 당연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고 줄지어 지나가던 인민학교 어린이들로부터 특유의 거수경례를 수도 없이 받아야 했다.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에는 군인들을 포함, 직장인 어린아이들까지 동원되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군인이건 어린이들이건 우리 눈에 비친 그들의 왜소한 어깨는 척박하기만 한 논과 밭 그리고 변변하게 생긴 나무라곤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경관과 맞물려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원산은 그래도 활기가 넘쳤다. 「사회주의 강행군」「충효일심」북한 땅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빨간색 선전 간판과 함께「생선국집」이라는 음식점 간판이 활기 있는 항구도시로서 원산을 특징지워 보여주고 있었다.
원산 중심부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우리의 차량행렬은 정말 눈요깃감 같았다. 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 속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쏟아져 나왔고 아이들은 웃으며 차량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였다.
항구도시 원산항에 정박해 있는「만경봉」호가 여기가 진짜 강원도 도청 소재지 「원산」임을 확실하게 알려주었고 원산「동명려관」에서 점심으로 나온 원산명물 「털게」역시 우리가 원산 땅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 감추고 싶은 이야기] 이윤자 편집국장 북한 방문기 넷 : 금강산 가는 길 (상)
목메어 부르던 “그리운 금강간” 민족 심성 그대로 간직
평양서 금강산까지 308km 차량으로 이동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 여과 없이 전달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초록으로 물든 금강산, 긴장된 마음 활짝 열어줘
발행일1998-09-20 [제2120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