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성당(경남 울산시 울주군)내에 위치한 신앙유물 전시관은 언양지방 200여년의 신앙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의 보고(寶庫)다. 부산교구 내 최초로 건립된 고딕식의 언양성당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언양지방 선교 200주년 해인 1990년 12월 개관된 신앙유물 전시관은 당시 신자 가정에 소장 중이던 선조들의 신앙유물, 민속품 등 8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엔 초기 신앙공동체에 관련된 유물들로 고문서, 각종 전례서, 제의와 성구, 초창기 사진자료 등이 순례객들을 맞는다. 중요 유물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범 라우렌시오 주교의 유해, 가장 오래된 성모상, 죽림굴에서 당시 신자들이 사용하던 구유 등이 있다.
1916년부터 31년까지 평신도 활동상을 기록한 부산지방 천주공교협회록과 청년회와 부인회의 활동상을 담은 회의록(1923~1927), 1928~1947년까지의 본당 운영 및 현황에 관한 기록 등 초기 신앙공동체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고문서들도 눈길을 끈다.
아울러 성소의 온상지로 유명한 언양출신 사제 35명의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대두대교구 교구장을 지낸 고 서정길 대주교와 전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를 비롯해 최현철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이종철 신부 등이 이곳 출신이다.
또 탑곡공소에서 나온 공소 제대를 그대로 옮겨와 재현했다. 초창기 신앙공동체가 쓰던 라틴어 미사경문과 감실, 십자가는 마치 이 자리에 선조들과 함께 있는 듯 감회에 젖게 한다. 2층엔 의식주와 관련된 민속품 340여점이 전시돼 있다.
『한국천주교회의 초기 박해는 분명 불행이었지만 한편으론 다행인 점도 있다』는 한 교회사 학자의 말처럼 언양지방 역시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앙선조들에 의해 신앙촌이 형성된 곳이다. 언양지방에 천주신앙이 전래된 것도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박해 때문이었다.
언양지방 신앙역사는 첫 신자 오한우(베드로)와 김교희(프란치스코)가 1790년 한양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된다.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된 지 불과 6년 후의 일이었다. 이후 박해시대땐 많은 신앙선조들이 인근 산과 계곡으로 피신해 와 신앙촌을 일구었으며, 이 가운데 13곳이 성지와 신앙유적지로 보존되어 순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앙유물 전시관과 함께「언양성지(사적지)」로 불리는 인근 13곳의 크고 작은 신앙유적지들은 언양지방만의 자랑이자 순례객들에게도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간월산과 김 아가다 묘. 부산 경남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공소(1815~1860)가 있던 자리로, 첫 신자인 김교희(김 아가다의 조부)일가로부터 전교가 시작됐고 을해 기해박해를 거치면서 충청도와 영남 각처에서 피신한 사람들로 큰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기해박해 이후에는 다블뤼 안 주교와 최양업 신부의 전교 대상지이기도 했다.
흔히 「죽림굴」로 알려진 대제공소도 선조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곳. 국내 유일의 천연 석굴공소인 이곳은 주변에 산죽이 많아「죽림굴」로 불렸다. 이 공소는 대나무와 풀로 덮인 낮은 입구 덕분에 위장이 용이했다고 전해진다.
경신박해때 최양업 신부가 이곳에서 4개월간 은신하며 미사를 집전했고, 1860년 9월 3일자 그의 마지막 서한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지난 86년 발견돼 해마다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언양성당에서 불과 3㎞ 거리에 있는 옥터, 1868년께 시작되어 현존공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살티공소, 첫 신자 김교희와 오한우의 묘소가 있는 백마등과 토현 등 신앙선조들의 정착지였던 많은 유적지가 있다.
언양 신앙유물 전시관은 부산교구내 성지개발 및 순교자 현양사업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교회사의 산 교육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협소한 공간과 비과학적인 유물 보존실태는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일개 본당 혹은 지역의 노력만으로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교회 신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언양은 석남사, 작천정 계곡, 자수정 동굴, 얼음골, 표충사 등 유명 관광지도 인접해 있어 가족과 함께 순례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언양 IC로 나와 언양성당을 찾으면 된다.
(052)262-5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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