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이땐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조상님들의 성묘도 하고, 모처럼 고향집에 모여 정다운 얘기꽃을 피운다. 다시 한 번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는 흐뭇한 시간.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식들 걱정으로 하루도 맘 편히 지내지 못했던 고향의 노부모들은 못 본 사이 훌쩍 커버린 손자 손녀들의 재롱과 자식들의 건강하고 밝은 웃음을 대하며 마음을 놓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한가위가 다가올수록 모든 이들의 마음이 무겁다. IMF한파로 졸지에 생활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고, 더구나 전국을 강타한 수해로 많은 사람들이 살집마저 빼앗겼기 때문.
「가뭄 끝은 있어도 큰물 끝은 없다」. 이 말을 실감케 하는 아픈 현실이 도사린 아직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해현장을 찾아보았다.
◆ 안동교구 상주 화령본당 하송공소
자식들 찾아와도 반겨 줄 방 한 칸 없어
피난살이 끝내고 다시 일어서기엔 역부족
보조금 융자 혜택, 되레 아픔만 더할 뿐
안동교구 화령본당(주임=박윤정 신부) 관할 하송공소 박상환(베네딕도ㆍ58)회장 내외. 이들도 한 달 전 수해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집은 완파되고, 세간은 모두 물에 떠내려갔다. 부부가 조용히 여생을 지내려던 소박한 소망이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 79년 이곳을 떠나 4남매 뒷바라지에 온갖 고생을 다했던 이들 내외는 2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남은 인생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내려고 귀향한 것. 이 부부는 비록 남의 땅을 임대해 논농사, 고추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삶을 일궈 나갔다. 수해가 닥치기 전까지는….
현재 박회장 부부는 하송공소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각지에서 눈물겨운 온정이 쏟아졌지만 그것으로 임시방편. 다시 집을 짓고 일어서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부에서 수재민을 위한 특별 보조금을 융자해준다고 하나,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다. 자식들도 하루하루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누구하나 도움을 줄 수 없는 형편. 이들 내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식들에게는 『다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박회장 내외는 최근 점점 근심이 쌓여간다. 한가위는 다가오는데 자식들 맞이할 집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올해 다섯 살인 손자 수민이의 얼굴도 눈에 아른거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송편을 나눠 먹던 예전의 행복했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예년 같으면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집도 집이지만 제사라도 지낼 수 있을는지 걱정이에요』
수해를 당하고 한때 이곳을 떠날 생각을 했다는 박회장. 그렇게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화령본당 박윤정 주임신부의 간곡한 권유와 주위 신자들의 따뜻한 사랑의 힘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어쨌거나 다시 일어서야죠. 지금까지 저희에게 사랑을 베푼 모든 분들을 봐서라도…』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박회장 부부. 기억하기도 싫은 수해 당시를 지우고 싶지만, 아직도 곳곳에 상흔이 남아있어 이 부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번 추석이 이들에겐 유난히 쓰라린 아픔으로 기억될 듯하다.
◆ 의정부시 가능3동 백석천변 수재민들
숟가락도 없는데 어떻게 집 지으라는 건지…
대통령까지 다녀갔건만 이젠 그 누구의 방문도 달갑지 않아 한낱 동물원 원숭이에 불과…
아직 텐트ㆍ강당 등에서 숙식
정부 지원 대책 「그림의 떡」
하루하루 생활 불안ㆍ막막할 뿐
한가위를 앞둔 지금도 의정부 가능 3동 백석천변에는 아직 키낮은 텐트가 띄엄띄엄 눈에 띈다. 수해가 휩쓸고 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마의 흔적을 떨쳐버리려는 수재민들의 몸부림은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난 8월6일 새벽 4시 몰아닥친 물벼락에 천변의 112가구가 파손되고 600여 가구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당한 이곳 주민들은 희망없이 한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자신들의 삶에 회의마저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차오르는 물에 놀라 잠결에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는 이금례(69세)씨는 한 달이 넘게 텐트 속에서 지내고 있는 피해주민 중의 한 사람.
『그때 죽지 못하고 살아 나온 게 원망스럽습니다』
7살ㆍ9살 난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딸 내외와 50여 평의 집에 단란하게 살고 있던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의 한탄은 길게 이어진다. 태어나서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이씨 할머니는 남에게 잘못이라곤 한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느냐고 하소연이다.
이 씨 할머니 가족들과 피해주민들에게는 기자의 취재를 비롯한 외부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 야속할 뿐이다. 수해가 나고 방송사와 신문 등 언론기관을 비롯해 대통령까지 다녀갔건만 자신들의 삶은 한낱 동물원 원숭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호우 피해 복구비 지원 기준」에 따라 이씨와 같은 가옥이 완전 유실되거나 완파된 주민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착공과 공사 중, 준공 때 각각 200만원씩, 그리고 최고 2,000만원까지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그럴 듯한 복구대책에 비해 실상은 수재민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당장 숟가락 하나 없이 나와 근근이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어 공사에 들어가며 600만원으로 뭘 지으라는 겁니까』
이번 비로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강경숙(50)씨는 정부의 2,000만원 지원 대책도 생색내기라며 분개한다. 이 2,000만원에는 앞서의 긴급지원금 600만원이 포함된 데다 가옥주 자부담 200만원을 제하고 나면 순수 융자는 1,20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털어 놓는다. 그나마 1,200만원도 담보와 보증인을 까다롭게 요구해 수재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런 이유로 집짓기를 포기한 수해민들 중에는 자식이나 친척집에 얹혀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직까지 공공시설을 빌려 쓰는 수재민들도 적지 않다. 새벽에 일어난 산사태로 집이 쓸려나가기 직전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한정기(55)씨는 의정부 시민회관 강당에서 17가구와 한 달 넘게 숙식을 같이 하고 있다. 경기도 지역에선 유일하게 아직까지 임시보호소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18가구의 생활은 가히 피란민 생활을 방불케 한다.
수재민 대책위원장이기도 한 한씨는 『이번 비 피해는 도로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인재임이 분명한데도 시와 정부는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천재지변으로만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백석천 상류의 안골 유원지에서 음식점을 하던 서순자(47)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순간에 수십 년을 일궈온 수억원의 재산을 잃은 서씨는 고등학교 2학년인 딸도 당장의 등록금 걱정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연신 눈물을 훔쳐댄다. 이미 개울이 되어버린 서씨 집터엔 시에서 다시 건축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 수재의연품으로 전달된 여름 옷가지와 이불 등은 이미 새벽 냉기를 막아주지 못한지 오래다. 더구나 수해초기의 관심이 식자 생수와 의약품 등 구호물품의 지원이 뚝 끊겨 호구지책도 막막한 실정. 거기다 이들이 비를 피하고 있는 시민회관도 9월말이면 비워줘야 할 상황이어서 이들 18가구의 겨울나기는 걱정을 뛰어넘어 존재의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함을 던져주고 있다.
부천에서 친구의 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달려온 이종우(도마ㆍ인천교구 삼정동본당)씨는『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행정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당 한켠에서 어른들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은성군(8ㆍ의정부서초등학교)의 장난이 이어지고 있었다.
[르포] 수해…복구…그 후 삶의 현장을 찾아서
"차라리 한가위가 없었으면…”
발행일1998-09-27 [제2121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