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신앙심을 가진 아내는 저의 신앙적 모델입니다』 『남편의 적극적 후원 없인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죠』
이들 부부는 서로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른다. 절도와 근엄한 기품. 강풍에도 쓰러질 것 같지 않은 기개. 그러나 또 한편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온화함이 언뜻언뜻 내 비치는 조덕래(아우구스티누스ㆍ47)대령. 화사한 얼굴. 단아한 모습. 친근한 인상 속에 열정 깊은 신앙이 배어있는 이선영(실비아ㆍ44)씨. 20년 넘게 살아온 깊은 부부간의 정에다 한 신앙 안에서 느낄 수 있는「신앙적 행복함」도 물씬 풍겨 나오는 이들 부부.
조대령은 고향이 대구. 이선영씨는 전북 익산. 영-호남 화합을 몸소 실천한 부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한 신앙에서의 행복함」은 한 순간에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양보와 이해, 관용 속에서 일궈낸 합작품.
70년초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영적 목마름으로 전전긍긍하던 조대령. 개신교에도 불교에도 가봤다. 충족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성당을 찾은 조대령은 정진석 대주교(당시 육군사관학교 군종신부)의 인품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73년에 세례를 받았다. 사관생도 4학년 때 만난 이선영씨와 79년 결혼했다. 당시 이선영씨는 개신교 신자.
『처음엔 남편을 개신교 신자로 개종시킬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종교로 인한 별다른 마찰은 없었지만 「한 가족이 한 종교를 가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녀는 계속 「개신교에 나가자」고 남편에게 권유해봤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이 성당에 나가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고.
이러한 남편을 개종시키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결국 자신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88년에 영세한 그녀는 어렵게 선택한 신앙이라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교회 일에 열성적이다. 삼위일체본당에서 96년 처음 시작한 「사병선교후원회」에 회장을 맡아 구치소 방문ㆍ초소 방문ㆍ음식제공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 조대령은 사목위원회 사병분과위원장을 맡아 선교후원회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부창부수의 전형」이라 평한다.
조대령이 1사단 산하 부대에서 연대장을 할 당시 전진본당 성모회장을 맡은 이씨는 18개월 동안 승용차로 4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거리를 달려 회장직을 수행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다. 장녀 조수영(로사ㆍ20)양은 아빠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길 원한단다. 이선영씨는 반대도 많이 했지만 이젠 아이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한다. 막내 조현조(스테파노ㆍ18)군은 공주 한일고등학교에 다닌다.
이씨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조군이 자기 전에 꼭 주모경을 3번 바친다고 연락이 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대령은 『무엇보다도 군종신부님들의 활발한 활동을 도와야 한다』면서 특히 군대 내 신자 간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집 - 군인주일에 만난 사람들] 논산 삼위일체본당 조덕래ㆍ이신영 부부
어렵고 특수한 사회 「군대」…많은 기도ㆍ지원 절실
“한 신앙안에서 한 행복 찾았어요”
아내 활동에 남편 지원 ‘부창부수’의 전형
사병 선교후원회 등 각종 본당활동에 앞장
발행일1998-10-04 [제2122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