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신학생들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주제로 9월 21~24일 3박 4일간 의정부 한마음 수련장에서 피정을 했다. 피정을 통해 비춰진 군인 신학생들의 고뇌, 갈등 등을 조명해 보고 많은 어려움, 큰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들을 소개한다.
『학사님 학사님 우리 학사님』. 입대 전 성당에 가면 항상 듣는 소리다. 왠지 기분 좋고 「나는 뭔가 다르다」는 우쭐한 기분도 간혹 들었다. 그러다 군에 입대. 기상나팔 소리에 잠깨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학교 시절 일찍 일어나는 덴 선수였기 때문에. 그러나 고참이 퍼붓는 쌍소리, 간혹 벌어지는 얼 차렷은 감당하기 힘들다.『학사님』이라 불러주지도 않는다. 특별한 대우도 없다. 고참의 횡포로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한다.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괴롭다.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복음적 생활을 할까 걱정이 앞선다. 세월아 어서 가라. 매일 매일 제대 날짜만 손꼽아 본다.
군인 신학생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 힘들어서 그런지 외로움도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가끔은 친했던 여자 교리교사의 얼굴도 떠오른다. 『학사님』하며 얼마나 따랐는데.
군인 신학생. 「작은 군종신부」라 불리기도 하는 그들은 이렇게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번에 펼쳐진 피정에서 군인 신학생들은 그들의 고민을 맘껏 토로했다. 오래간만에 소속교구 성소국장 신부님과 인사도 했고 함께 미사도 봉헌했다. 수원교구 한연흠 신부의 「성령의 해」특강과 서울대교구 도시빈민 위원회 위원장 이기우 신부의「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주제의 강연도 들었다.
피정 3일째. 9개 그룹으로 나눠 조정래 신부로부터 부여받은 9가지 주제를 토의했다.
「군인, 신학생 그 갈림길에 대해」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군대에 신학생으로, 선교사로서 파견됐기 때문에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군인은 나를 위해 남을 죽이는 사람. 신학생은 남을 위해 나를 죽이는 사람. 이 양자의 갈림길에서 갈등과 번민을 겪고 있는 신학생들. 그들은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보며 진지하게 묵상을 했다.
「여자, 영원한 나의 갈등」이란 주제를 토의해 보기도 했다. ▲나 하나를 버림으로써 모든 여자가 나의 동반자. 사랑의 대상으로 이성을 생각해 보는 중요한 시기가 신학생이며 스스럼없는 사목을 위해 불가결한 요소. ▲피하지 말고 순수한 만남을 가져 볼 필요도 있다. ▲성적(性的)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싹튼다. 피조물이라는 견지에서 영적으로 승화시켜 봄이 바람직하다. ▲어쨌든 여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등 의견도 다양하다. 신학생들의 「여성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주제로 펼쳐진 이번 피정은 신학생들의 정체성을 자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혼자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있고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좋은 장이 됐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20가지」를 토의한 신학생들은 그 첫 번째는 ▲어학공부에 목숨을 건다. 두 번째는 ▲군대에 반드시 가 볼 것. 세 번째는 ▲진한 사랑에 빠져 볼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체육대회 중 군종후원회원들의 방문. 풍성한 먹을거리와 사랑의 말을 전하는 후원회원들의 정성에 감격해하는 신학생들. 군종후원회의 발전에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이번 피정에 참가한 187명의 군인 신학생들은 3S(Sanctitasㆍ성덕 : Scientiaㆍ지식 : Sanitasㆍ건강)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 봤다. 『해이해지는 사제성소를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됐다』라고 말하는 박락군(사도요한ㆍ천주성삼회)신학생. 『동료들을 만나 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고정관념을 벗고 오만함을 탈피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라고 말하는 이정준(오식스도ㆍ서울대교구 왕십리본당)ㆍ오정건(스테파노ㆍ서울대교구 문정동)신학생.
노동사제가 꿈이라는 광주대교구 지산동본당의 이건승(토마스 아퀴나스)신학생은 내년 3월 3일이 제대라며 후배 신학생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밀려오더라도 신학생으로서의 신원을 망각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우렁찬 성가소리. 하나 된 마음. 내 생애 최대의 순간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하느님의 배려」.이번 피정에 참가한 군인 신학생들의 소감이다.
피정 마지막 날 군종교구장 정명조 주교와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주교는 이번 피정이 『신학생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며 군인 신학생들에게 복음을 실천하는데 소홀함이 없기를 당부했다. 정주교 주례의 미사 봉헌으로 이번 피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특집 - 군인주일에 만난 사람들] 피정을 통해 본 군인 신학생의 삶의 현장
어렵고 특수한 사회 「군대」…많은 기도ㆍ지원 절실
“갈등 딛고 복음적 삶 살고자 노력”
“「많은 어려움ㆍ큰 유혹」은 우리의 적,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든든한 무기”
발행일1998-10-04 [제2122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