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조금은 한적해 보이는 수원교구청의 이른 아침.
은퇴 주교로서 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교구청에 머물고 있는 김남수 주교는 가끔씩 최덕기 주교와 다정한 모습으로 산책을 즐길 때가 있다.
경내를 걸으며 도란도란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이는 「아버지와 아들같다」는 말로 두 사람의 깊은 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23년간 교구장으로서 수원교구 발전에 헌신하다 1년전 은퇴한 김남수 주교는 주위로부터 그런 얘기를 자주 들어 온 듯, 『수원이 원래 효의 도시야』하는 말로 자신의 근황을 설명한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 다리가 조금 불편해 지팡이 생각이 가끔 날 뿐, 몸도 건강하고 후임자도 잘 하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지 뭐』
김남수 주교는 오는 10월 17일이면 사제수품 50주년을 기념하는 금경축을 맞는다.
그래서 수원교구는 교구장 최덕기 주교를 비롯 모든 교구민들이 온 마음을 모아 경축행사를 준비중에 있다.
지난해 6월4일 은퇴함으로써 75세 정년에서 단 하루도 더도 덜도 하지 않았던 김남수 주교는 교황청에 교구장 은퇴를 요청했다가 소식이 없자,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찾아가 직접 사인을 받아 올 정도로 단호하게 교구장 자리를 물려주고 뒷자리로 물러 앉았다.
『조그마한 수원교구를 물려주고 나는 중국을 내 교구청처럼 자주 다니고 있지. 내 소망은 중국교회가 교황청과 연결돼 보편교회속에서 함께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지』
이미 김남수 주교는 그일을 위해 중국을 세 번이나 다녀왔을 정도로 자신이 태어났던 나라이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중국교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원래 부친의 고향은 수원이지만 왜정때 땅과 재산을 빼앗긴 부모가 중국 연길로 이주하면서 김주교는 연길에서 태어 났다.
물론 형님 등 일부 가족은 수원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김주교는 연길에서 14세까지 살다가 수원으로 내려왔고 곧 원산의 덕원 중학교에 입학, 고등학교와 덕원신학교를 졸업했다.
성소를 가져다준 계란
단 3가구가 사는 깊은 산골에서 성장한 김주교는 해마다 판공때가 되면 신부님이 찾아와 성사를 주곤 했다고 전한다.
6세가 되던 봄, 집을 찾아온 신부님께 어머님은 매 끼니때마다 반찬으로 계란을 드렸는데 그 계란이 너무 먹고 싶었던 김주교는 한조각만 남겨 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계란이 먹고 싶어 달라고 졸랐더니 「너 줄 계란이 어디 있니」하시면서 주시질 않았어요』
『그럼 신부가 되면 되겠네 했더니 어머니께서는 「네가 신부만 되면 계란이 아니라 닭이라도 잡아주지」라고 말씀해 그때부터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주교는 자신의 선례로 보아 성소를 받는 계기는 어떠해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후 감자를 썰어 제병을 만들고 미사를 드린다며 부모님 입에 얇게 쓴 감자를 넣어 주기도 했고 부모님은 기쁘게 받아 드셨다고 한다.
자유 만끽하며 살아요
교구장직을 물려주고 난 뒤 적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끔 듣지만 요즘 아주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전한다.
보좌주교가 있어야 할 처지인데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최주교를 도와, 주말에는 주로 견진이나 성당봉헌식에 찾아 다니며 최주교 보좌 노릇을 하고 하고 있다는 김남수 주교.
그는 아버지가 아들을 돕는 마음, 그 기쁨으로 최주교를 돕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이 교구장 주교로 와서 첫 사제품을 준 사람이 최덕기 주교이기 때문에 더욱 진한 애정을 갖는다.
그런 중에서도 후임 교구장으로서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가장 기억에 남는 그때 그 시절
사제생활 50년을 회고해 볼 때 김주교는 사제로서 첫 임지였던 혜화동본당 보좌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당시 35개에 달하는 공소를 찾아 다니는 강행군이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떠 올리면 사제생활의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 후 로마 울바노 대학에 유학,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김주교는 그 당시 연길교구 소속이었기에 중국이 공산화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중국에 들어가 사목활동을 했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사제생활 50년동안 김주교를 가장 기쁘게 했던, 큰 기쁨과 보람은 죄인의 회두를 보는 것.
김주교는 주교로서 뿐만 아니라 사제생활 전체를 통틀어 평사제로서 고백소에 앉아 있을 때, 누구도 느낄 수 없는 희열의 순간을 수없이 맛 보았음을 강조한다.
판공때 수많은 신자들로 애는 먹어도 냉담했던 신자가 찾아와 「10년째 성사를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고해를 시작하는 순간, 아무리 푹푹 찌는 고백소라도 마음이 착 가라 앉으며 사제로서 은총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본래 일하기를 좋아했던 김남수 주교는 뭔가 해야 하는 성품이지만 교구장직을 물려준 요즘에는 평일을 택해 낚시를 자주 간다.
낚시가 개인적으로 갖는 유일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잡생각이 없어지고 고기가 물 것이라는 희망속에 지내는 순간 김주교는 낚시를 통해 인생의 맛을 느낄 때도 많다.
중국교회에 관심 가져 주길
노사제로서 김주교는 특별히 후배사제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국이라는 위치를 사제들이 자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세계를 둘러봐도 사제 수도성소가 한국처럼 활발한 곳이 없다는 김주교는 우리에게 보다 큰 사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아시아에 태어 났으면서도 유럽을 먼저 찾아 가셨고 아시아는 맨나중으로 돌려 놓으셨음』을 강조한다.
교황님이 그 사실을 제일 먼저 깨닫고 계시기에 교황은 때때로 한국교회의 중요성과 사명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김주교는 한국교회 사제들이 이런 뜻을 알아 북방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우리의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13억 중국인구의 복음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김남수 주교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김주교는 이를 위해 평신도들이 앞장서서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터널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신학교 설립이 가장 큰 보람
교구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23년간의 사목활동 중 가장 보람으로 남는 것을 꼽으라면 김주교는 주저없이 신학교 설립과 한국외방선교회 육성, 미리내 수도회 창립 등을 꼽는다.
신학교가 설립되면서 사제성소 증가는 물론 교구발전의 요람이 돼 왔으며 한국외방선교회도 받던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성숙된 위상전환을 보여준 것으로 수원교구 성장의 원천이 됐다고 강조한다.
김남수 주교는 또 아이낳기 운동을 줄기차게 전개, 다른 교구에 비해 아이의 출산이 월등히 많은 교구로 잘 알려져 있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보아 1억의 인구는 돼야 자주독립을 유지할 수 있고 낙태도 방지할 수 있으며 신자 증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아이낳기 운동을 장려한 김주교의 변하지 않는 주장이다.
현 수원교구가 타교구에 비해 아이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주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낳기 운동에 잘 따라준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앞으로도 이 전통은 계속 이어지길 희망했다.
물론 김주교의 이런 주장에는 동료주교들도 처음에는 웃었을 정도였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좋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하느님이 주셨기에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며 아이낳기운동에 동참해 낳은 아이들중 상당수가 성소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김남수 주교는 그런 열매들이 하나 둘씩 영글어 갈 때, 사제로서 한평생 살아온 보람을 더 크게 갖게 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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