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강행군」. 북한땅 여기 저기 대형건물과 도로를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현란한 구호 가운데 유독 눈에 많이 띄는 현수막 하나가 아마도 「사회주의 강행군」일 것이다. 사회주의 강행군, 그 현실의 한 부분을 우리는 금강산 가는길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평양에서 강원도 땅 고송까지 크고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아까울 정도로 길은 사뭇 한적했다. 아스팔트 도로에 비해 시멘트로 단장된 고속도로가 주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중앙선을 넘나들며 좋은 길을 골라 달리는 묘미에 그 불편함은 묻혀버렸다.
그 도로변에서 우리는 「강행군」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남녀노소 구분할 필요없이 그들의 등에는 한결같이 국방색 륙색이 매달려 있었다. 큼지막한 그 륙색 봇짐은 군용 륙색처럼 길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그 무게만큼 사람들은 힘들어 보였다.
통칭 륙색(등에 메는 가방)이라 불리는 그 가방은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 전세계적으로 유행되고 있는 보편적 패션. 그러나 금강산 가는 길에서 만난 그 륙색의 행렬은 엄청난 유행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의 그 륙색과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들이 선택한 사회주의 강행군은 북한의 힘겨운 식량 실정상 현실적으로는 고난의 강행군으로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평양에서 우리 팀의 한명이 취재상 편의를 위해 사소한 물품들을 넣은 륙색을 등에 멘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던 북측 파트너들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양 손을 「해방」 시키기 위해 륙색을 맨다는 우리의 설명을 듣고도 찝찝해 하는 그들의 표정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강원도 땅에서부터 우리 일행은 강원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부지사급) 등의 호위를 앞 뒤로 받아야 했다. 그는 남쪽의 천주교와 민족화해위원회측에서 보내준 이번의 옥수수는 알갱이가 「실(實)하고」 「량호하다」면서 강원도민의 고마움을 대신 전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출현과 호위는 남쪽에서 보내준 옥수수를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데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공식적인 확인작업(?)의 일환과도 상관이 있는듯 했다.
원산에서 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송도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누렸다. 이름 그대로 소나무 숲이 빽빽하게 들어차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는 송도원에는 5월의 꽃 해당화가 붉게 타고 있었고 바다 저멀리 갈마반도 「명사십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승지였다.
북측 파트너들은 이 원산해변에서 『「통일의 꽃」 임수경양이 이 바다를 헤엄쳐 남쪽으로 가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며 임수경양의 「밀입북 사건」 당시의 무용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우리가 들른 북한 지역마다 사람들은 림수경양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가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았으며 방송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안내원」으로 일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깜짝 놀라면서도 감격해 했다.
오후 5시 15분 드디어 고성으로 들어섰다. 기기묘묘한 바위며 산의 모양새가 이미 금강산 구역에 들어왔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성에서 8㎞를 더 나아가자 그림으로만 대하던 절경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드디어 금강산 바로 아래까지 온 것이다.
산 바로 아래 널찍하게 자리한 금강산 호텔이 우리의 숙소였다. 금강산 호텔은 크고 우람했으나 손님은 우리가 전부인듯했다. 친절하기만한 접수대에서 숙박 신고를 하는 동안 둘러본 호텔 내부는 정말 소박했다. 관광객을 위한 상품 판매소와 서적 판매소 등 3곳 정도 1층에 자리한 것과 국제 전화소가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것이 눈에 띄었다.
안내된 5층 방의 창문을 열어제치고 베란다로 나서자 금강산 절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우리일행은 따로 산행을 할 필요가 없을만큼 절경속에 자리한 호텔의 적절한 위치에 감탄할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우리 일행은 북측 파트너들과 금강산 오르는 이야기로 늦도록 잠자리에 들 줄 몰랐다. 금강산에 대한 그들의 자랑은 대단했고 자긍심도 엄청나게 높았다.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금강산은 5월의 싱그러움을 잔뜩 머금고 있었으며 그들의 자부심은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산행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압축해서 볼 수 있도록 마련된 몇가지 행로가운데 3가지 정도로 조정됐다. 가장 보편적이고 유명한 지역으로 알려진 「구룡폭포」 코스와 기기묘묘한 바위산이 장관인 「만물상」이 자리한 「천선대」 코스, 그리고 「삼일포」 등이었다.
바로 이번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 결과로 확정된 금강산 관광에서 선정된 바로 그 코스들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감추고 싶은 이야기] 이윤자 편집국장 북한 방문기 넷 : 금강산 가는 길 (중) - 만물상과 천선대
5월의 싱그러움 머금은 ‘천혜’ 절경 금강산
「사회주의 강행군」 현수막 곳곳에 걸려 있어
북측, 민화위 보내준 옥수수에 대한 고마움 전달
송도원…해당화 붉게 타고 명사십리 보이는 명승지
구룡폭포ㆍ만물상ㆍ삼일포, 금강산 산행 유명 코스
발행일1998-11-08 [제2126호,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