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앉자마자 군가를 부르는 여성성악가의 노랫소리에 또 한번 놀란다…유일하게 해독할 수 있는 문자는 「9.9」, 북한의 건국일이다. 공항에서 오는 도로는 기념식과 많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깨끗하게 재정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위스 태생인 캐시 젤베거 씨는 홍콩 까리따스 국제관계 부장으로 일하며 지난 20여 년간 중국 본토에 여러 사회복지ㆍ개발사업을 주도해 왔다.
사회주의 국가 생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젤베거씨는 지금까지 19차례나 북한을 방문해 까리따스 구호품 현장 확인 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본보에 게재하는 방문기는 지난 9월 북한을 방문해 작성한 일기중 12~18일 분량이다. 홍콩 까리따스에서 보내 온 이 일기문에는 젤베거씨가 느낀 북한의 실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이 일기문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배제한,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강조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북한 긴급구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국제 까리따스가 실무를 위임한 홍콩 까리따스의 단일 창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근 2,500만 달러의 구호식량ㆍ영양식품ㆍ의약품ㆍ농업자재가 북한에 전달됐으며 북한에 상주하는 유일한 UN기구인 「세계식량계획기구」(WFP:World Food Plan)의 모니터 요원들이 구호품 분배와 사용을 확인 감시하고 있다.
▶98년 9월 12일
여느 때처럼 배이징 공황에서 옛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UN직원들, NGO 직원들, 한국사람, 대사관 직원 그리고 귀국중인 북한사람들….
배지와 특별한 꽃다발로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이 구별된다. 그 꽃다발은 김일성상에 헌화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다. 「위대한」또는 「경애하는 지도자」를 상징하는 그들의 배지는 국기에 버금간다. 비행기에 앉자마자 군가를 부르는 여성성악가의 노랫소리에 또 한번 놀란다.
영어로 된 최근판 「평양 타임지」는 볼 수가 없고 8월 7일자 프랑스 번역판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근 소식을 접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대신에 러시아어나 영어로 된 「코리아 투데이」라 불리는 잡지는 구할 수 있다. 배행기 이름은 종교적인 신념으로 투옥된 러시아 과학자의 이름을 딴 「투포레브」(Tupolev)였다.
드디어 평양공항에 도착. 공항 바깥쪽에서 걸려 있는 김일성 부자 사진을 보고 평양도착을 한번 더 실감했다. 순탄하게 입국절차를 마치고 짐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세관 건너편엔 Mr 한과 Mr 윤이라는 2명의 「홍수피해 복구위원회」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사인 Mr 소는 웃으며 아는체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의문을 가진 여자가 또 다시 왔구나」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 두명의 신사는 낯설었다.
우리는 교통이 자유롭고 깨끗한 평양대로를 통해서 시내에 진입했다. 도로에는 거의 만원인 시가전차가 다니고 있었고 보도에는 식료품 등을 지거나 머리에 인 남녀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길가에는 지난번보다 찬 음료나 스낵을 파는 음식점들이 더 늘어난 듯 했다. 건국 50주년 기념하기 위해 걸어놓은 북한기와 기념물들이 널려 있었다.
유일하게 해독할 수 있는 문자는 「9.9」. 북한의 건국일이다. 공항에서 오는 도로는 기념식과 많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깨끗하게 재정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CNN 방송이 나오는 「포통강」(Potonggang) 호텔에 머물렀다. 남한인 소유의 이 9층짜리 호텔은 1970년대초에 준공된 것으로 우리가 묵는 침실에서의 전경이 흥미로웠다. CNN을 위한 3개의 위성 안테나와 호텔 베란다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 그리고 피라미드를 본떠 만든 105층짜리 미완성 콘크리트 호텔. 이 호텔은 내가 95년 방문 때 모습 그대로였다.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이나 건축에 들어 갔다는 이 호텔은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