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추울 것이라는 올 겨울.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이때 따뜻한 마음과 나눔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이다. 본보는 교회력으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대림절을 맞아 자신의 것을 나누며 겨울을 녹이는 사람들의 향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 향기 또한 나눔으로써 올 겨울 모두가 뜨거운 마음을 지니고 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전날 내린 눈끝 바람이 아직은 따뜻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땅끝 마을 전라남도 해남. 군 단위로는 우리나라에서 면적이 제일 넓다는 해남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9개의 공소가 곳곳을 지키며 들어서 있다.
이 아홉 공소를 묵묵히 지키는 이들, 여섯명의 선교사들에게는 대림절이라는 절기가 따로 없다. 1년 365일 하루하루가 대림의 의미를 묵상케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들 해남의 선교사들 중 영전공소를 지키는 부부선교사 이호용(베드로ㆍ33) 김소라(데레사ㆍ33)씨의 삶은 조금은 색다른 향을 풍긴다.
남편되는 이호용씨의 세무공무원이라는 신분이 우선 그렇다. 그러나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의 내막을 듣게 되면 서울의 훌륭한(?) 임지를 마다하고 땅끝마을에 푹 파묻힌 그들의 삶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는 천사를 따라 살 뿐입니다』
뜻을 함께하는 동지이자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 김소라씨를 이씨는 줄곧 천사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 신자이던 자신의 삶의 궤도를 이다지도 크게 바꿔 놓았던 존재가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다.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던 89년, 이호용씨에게 부인 김소라씨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세무사 사무실 직원이었던 소라씨가 실수로 다른 서류를 이씨에게 넘기면서 둘의 삶은 갈피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또 한번은 이씨가 잘못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김씨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한 번씩 주고받은 실수가 계기로 되어 싹튼 사랑을 이들은「실수(?)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웃음을 묻혀 털어놓는다. 오로지 천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영세를 하고, 견진성사를 받고 또 제발로 무작정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찾아 들어간 이호용 선교사는 이 모두가 하느님의 안배라고 여긴다. 자신의 뒤를 따라 아내 김씨도 교리신학원을 다녔고 그렇게 결혼을 해 주현(임마누엘ㆍ6)이와 성현(프란치스코ㆍ4)이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날 천사(?)가 선교사 활동을 하고 싶다고 대뜸 뜻을 밝혔다.
『하느님 당신이 가장 아파하시는 곳에 보내주세요』
이씨는 망설임없이 해남으로의 전근을 신청했고 받아들여져 96년, 가을이 한창이던 10월 해남땅을 밟았다. 무작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선교사로서의 삶의 첫발은 경험을 쌓겠다는 요량이 컸다. 처음엔 공소를 맡을 엄두도 내지 못했으나 뜻하지 않게 해남본당에서 영전공소와 인근의 남창공소를 맡아줄 것을 제안해 왔다. 시골에서의 삶의 경험이 전무한 아내 김씨와 맡은 첫 선교임지는 다행(?)인지 신자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또한 선교사 새내기인 자신들을 위한 하느님의 배려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선교활동 1년여 만에 이들이 지키는 공소는 동네 놀이방 겸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200여 가구가 되는 적지 않은 마을임에도 놀이방이 따로 없는 이 곳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허물없는 친구 주현이와 성현이가 사는 공소는 종교가 있든 없든 아이들을 끌기에 충분했다. 두 부부가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항상 열려 있다시피한 영전공소를 찾는 첫 손님들은 대개가 동네 꼬마들. 어느 땐 두 부부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방문을 열고 들어닥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아이들은 15명 내외. 자연히 공소를 지키던 김소라씨는 아이들의 교사가 되고 말았다. 점심은 물론 일찍 찾아온 아이들과 늦게까지 놀다가는 아이들의 아침과 저녁을 차려내는 일에다 간식 마련까지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김씨의 주업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돈이 생기는 업이 아니라는 점이 여느 직업과는 다르다.
이런 삶을 통해 두 부부선교사는 동네 아이들의 이모가 되고 삼촌이 됐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네 식구가 살던 공소에는 두 식구가 더 늘어났다. 은아(4)와 은영(2)이가 그 주인공. 동네 신자 가정의 어려운 사정으로 맡게 돼 한 방을 쓰며 살기 1년, 멋모르는 은영이는 김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갖은 애교를 부린다. 칭얼대다 김씨의 품안에서 잠든 은영이의 모습은 흡사 아직 트지 못한 선교의 싹이라는 느낌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차편이 불편한 영전에서 두 부부는 집사(執事)역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몸이 불편해 보건소를 찾는 아이에서부터 노인들의 발걸음은 때를 가리지 않고 공소를 찾기 마련이다.
『좋은 이웃, 친근한 이웃으로 남기 위해 사는 것이지요.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하느님의 사업이 아니겠습니까』.삶을 바꾸려면 마음부터 바꿔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이들 부부는 자연스럽게 터득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동네 청년들의 도움을 얻어 교육관을 짓기도 했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한 조그마한 탁구장을 만들자고 나선 일이 되려고 그랬던지 그렇게 커져 버린 것이다. 특별한 보수가 없는 삶이지만 이렇게 쌓이는 마음이 이들 부부의 양식이 되고 있었다. 이들로 인해 땅끝에서부터 사랑이 무르익어 옴을 사람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종각의 종을 힘차게 치며 마을의 하루를 깨우는 부부선교사 이호영 김소라씨. 『모든 것을 그 분이 이끄셨으며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의 삶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발길을 어느 새 하느님께로 돌려놓고 있다.
[특집 - 대림절 기획] 이곳에도 아기 예수가… - 해남 영전공소 지킴이 이호용ㆍ김소라 부부
“천사의 삶 따라 살아요”
안정된 도시생활 떠나 96년 해남행
공소는 놀이방도 되고 교실도 되고
보수없는 삶…사랑은 커져만 가는데
발행일1998-11-29 [제2129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