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시기를 맞아 누구보다도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 특히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을 더욱 기대하고 있을것이다.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다독거려 줄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 환자들의 고통과 아울러 응급실에 근무하며 「생명 존엄」수호에 땀을 흘리고있는 응급실 의료진들의 노고를 지면을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응급실 한쪽 구석에 한 아이가 혼자 의자를 노리개 삼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정신없이 놀고있다. 급히 내닫는 이동식 침대 때문에 간혹 한쪽 구석으로 비켜섰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의자 옆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조금전까지도 멀쩡하던 할아버지가 물길에 미끌어져 넘어진 후 눈을 감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아 이상하단다.
28일밤 10시경 감남성모병원 응급실. 정문 오른쪽 벽에 가톨릭중앙의료원 이념이 적힌 액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치유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안에 재현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피는데 있다」. 응급실 중앙 기둥에 걸려있는 시계 바늘도 바쁜 사람들의 모습에 박자라도 맞추듯 째깍째깍 정신없이 돌아간다.
17개 침대가 환자들로 꽉 찼다. 침대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보호자들. 하나같이 우울하고 근심에 찬 표정들. 흐느끼며 울고 있는 사람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침대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응급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다. 재빨리 환자상태를 파악하던 의사가 『시피알』(CPR)이라 소리친다.
「CPR」(Cardiaeresuscitation Pulmonary)이란 「심폐소생술」을 말한다. 아마 심장경색 환자인 듯. 또 다른 한편에서 『인터베이션』(interbation)이라 소리치는 의사가 보인다. 기도(氣道)를 유지하기 위한 「기도삽관」을 의미한다.
침대마다 설치돼 있는 멀티모니터. 환자의 호흡수. 혈압. 산소포화도 등을 점검한다. 모니터 상에 나타나는 눈금의 높이에 따라 환자들의 희비가 교차된다. 한쪽 벽에 걸려있는「비유박스」(View-Box).「엑스레이」(X-Ray)촬영 필름을 판독하기 위한 기구다. 포도당. 생리식염수. 산소호흡기도 눈에 띈다. 이러한 의료장비들과 의료인들의 감각이 어우러져 「응급환자치료」 라는 멋진 합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울부짖는 환자들속에서, 분주함 가운데서도 체계적인 움직임들이 속속 눈에 띈다.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완화시키기 위한 의료진들의 노고가 눈물겹다.
26살된 아들이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크게 다쳤다는 한 어머니의 절규. 시아버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쓰러져 응급실로 모시고 왔다는 두 며느리. 급성설사를 하는 아기를 안고 온 젊은 부부. 고열ㆍ 골절ㆍ 수혈이 필요한 사람. 환자들의 고통도 각양각색.
『보호자들의 생떼에 시달릴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은 아마 보호자 못지 않을 것입니다.』
차현민(가밀로·26·서울 개봉동본당) 내과 의사는 보호자들에 침착함을 당부했다. 1분의 여유도 없이 그는 또 청진기를 목에 걸고 환자들에게로 종종 걸음으로 내닫는다.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의료진들. 가장 위급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사명감있는 우수한 인력들이 응급전문의로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 이를위해 응급의학과가 보다 활성화 돼야 할 것같다.
이와 더불어 응급판독 통보시간 단축 노력과 검사 결과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통보해주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가능하면 응급판독 담당의사를 따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응급환자의 응급실 이용으로 인해 진정한 응급환자의 치료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잠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당신을 더욱 강하게 하고… 주님께선 나의 구원자이신데 내가 누굴 두려워하랴…』
◆중환자 보호자 손영희(데레사)씨
“모든 것 하느님께… 인간이 무슨 힘이…”
『모든 것을 하느님 섭리에 맡길 뿐이죠. 인간이 무슨 힘이 있나요.』
손영희(데레사·63·서울 사당동본당 )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느라 그런지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하다. 너무 많이 울어 이제 더이상 나올 눈물도 없다고 한다.
『서울 반포 한신상가에서 20여 년간 할아버지와 단둘이 야채가게를 해오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자고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할머니는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잇지 못한다.
할머니의 남편 송창환(요셉·64) 할아버지는 지난달 17일 젊은 사람이 퍼붓는 욕설에 분을 참지 못하다 급기야 심장경색이 왔다 한다. 심장이 멎은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심장 소생은 성공했으나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 의료진들은 심장이 다시 뛰는 것만해도 기적이라 한단다.
22살에 할아버지와 연애결혼했다는 손할머니는 미운정 고운정 다 들은 할아버지가 빨리 회복돼 옛날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길 빌고 또 빈다.
12살에 영세. 50년이 넘는 신앙생활 중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거른 적이 거의 없다 하는 손할머니. 아픔으로 밤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는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마음에 아기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이 미치길 기대해본다
◆6년째 응급실 근무 박지은(마르티나) 간호사
“간호사로서 긍지·보람 제일 많이 느껴요”
하얀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걸친 박지은(마르티나·29) 간호사. 가냘픈 몸매 때문인지 응급실 근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그녀는 벌써 6년째 응급실에서 근무를 한다.
『응급실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장소이지만 한편으론 간호사로서의 긍지나 보람도 제일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다부지게 말하며 응급환자들의 차트 정리를 하고 있는 그녀의 재빠른 손길이 외모하곤 딴판이다.
이날 저녁엔 책임간호사가 없어 근무 간호사 중 제일 고참인 그녀가 책임 간호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들 말한마디, 손놀림 하나하나가 환자나 환자보호자의 마음에 안식이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녀는 응급실에 근무하는 모든 의료진들은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 하루에 100여 명의 환자들이 응급실로 들어오고 있다며 최선을 다했으나 시신으로 변해버린 환자를 보면 의료인으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비애감도 들 때도 간혹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조그마한 여유가 생기면 성당을 찾아 하느님께 간구한단다. 『주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라고
◆취재후기
대부분 중요성 비해 지원 소홀
정확하고 신속한 진료제공 중요
『응급실』. 왠지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 든다. 평생 한번도 가지 않기를 소망하는 곳. 현재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은 인턴 6명, 응급의학과레지던트 5명, 응급전문의 2명,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지원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강남성모병원 응급실 체계는 우수한 편이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원은 응급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그 중요성에 비추어 소홀히 하고 있다는게 중론이다.
98년도 보사편람에 따르면 97년 6월 현재 전국 구급대원은 간호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등을 합쳐 총 3, 600여 명, 구급차는 3, 5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전국 응급의료기관 현황을 살펴보면 병원수는 355개며 응급병상은 6, 789개로 나타나 있다. 이의 확충과 더불어 현재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응급환자정보센터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환자에 대한 정확하고 신속한 진료의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해 떠날 때까지의 소요시간인 재원시간에 대한 체계적 연구 등을 통해 응급실의 종합적인 관리 능력을 향상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대림절 기획] 이곳에도 아기 예수가… - 병원24시…강남성모병원 응급실을 찾아
모두가 급박한 상황… 이들의 고통·아픔을 달래줄 이는…
“울부짖는 환자들속에서, 분주함 가운데서도 체계적인 움직임들이 속속 눈에 띈다.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완화시키기 위한 의료진들의 노고가 눈물겹다”
발행일1998-12-06 [제2130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