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담배 연기 속에 명상에 잠긴 카페의 시인,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사색에 잠긴 작곡가, 몽환적 눈으로 잠시 스쳐는 듯한 필름 아티스트의 얼굴…….
갖가지 생활을 저마다 꾸려 가는 사람의 모습들, 특히 이들의 얼굴에서 발산되는 이름 붙이기 힘든 향기를 쫓는 사람. 인물사진작가 양재문(노엘·46·서울 서초동본당). 「사진은 포트레이트로 시작해서 포토레이트로 끝난다」는 작가들 사이의 말이 사족일 수밖에 없음이 그의 작품세계를 접하면 단번에 느낌으로 와닿는다.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부터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양씨가 첫 작품전을 갖게 된 것은 그러고도 20년을 더 살고 나서다. 그것도 절친하게 지내던 화가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겪게된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만족을 느끼며 살았던 삶, 죽음마저도 인생의 한 과정쯤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삶, 그런 삶 속에서도 깨닫지 못했던 모습 「정리하며 사는 삶」의 모습을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7년간 고향인 전라북도 옥구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특이한 경력의 양씨는 사진에 대한 누를 수 없는 애정을 참지 못하고 서울행을 결심하고 만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그였지만 서울에서의 5년여 만에 일포드 씨바크롬 사진전의 최고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미 수준급에 올라 있었다. 한 장의 사진에서 그 인물의 개성이나 인품마저 직접 느끼게 하는 객관적인 사진, 양씨는 인물이 처한 환경 속에서 철저하고 밀도있는 연출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영상화시키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그가 지난 여름 ORATIO ANIMI(영혼의 기도)를 테마로 연 세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세계는 혹 일탈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 작가가 찾아간 동해의 새벽녘은 님의 현존을 느끼게 한다.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라고도 하지요. 보이는 것을 좇는 신앙이 아닌 느끼는 신앙을 표현하고자 바다로 나섰지요』
어둠 속의 최소한의 빛을 잡아내고자 적외선 필름으로 걷어낸 바다에서는 영혼의 기도가 파도와 함께 밀려왔다. 이렇게 그가 바다로 나서게 된 것은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귀의(歸依)의 삶이 한몫을 했다, 지난해 부활절에 영세한 그는 세례 후 줄곧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 하느님의 빛을 보여주고 싶다』는 양씨는 궁극에는 인간의 모습에서 영혼의 기도를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간직하며 살고자 한다.
※문의=Y포토랩(02)518-6005
[98년 사진 영상의 해 기획 - 한국 가톨릭 사진작가들] 18. 인물 사진 전문 작가 양재문씨
“자연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 하느님의 빛을 보여주고 싶어”
인물이 처한 환경속에서 철저하고 밀도있는 연출 통해 인물의 내면을 영상화시키는 작가로 ‘정평’
발행일1998-12-06 [제2130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