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알만한 일도 아닌데…』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을 하고서 찾아간 기자에게 박교사는 겸연쩍은듯 머뭇거리며 이 말만 되풀이한다. 안경너머로 눈만 껌벅이는게 여간 곤란해하지 않는다.
구두닦이 교사 박영우(시몬·50)씨. 부산 동래여중에서 20여 년간 수학교사로 몸담고 있는 박씨가 동료 교사들의 구두를 닦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 가을께.
『하루는 신부님 강론을 듣다가 귀가 번쩍 뜨이더군요.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이 구두를 닦아서 모은 돈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썼다는 얘기였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레지오 단원이었지만 성격탓인지 전교활동이나 드러내놓고 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던 박씨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평소 신자로서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어요. 또 교사로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숨어서 구두를 닦아주는 일이야말로 학교에서 신자인 나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쉽지만은 않았다. 주위의 시선이 따가울 때도 있었고,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사심없이 해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우선 동료 교사들의 도움을 구했다. 그들을 통해서 박씨의 일이 알음알음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모인 회원이 24명. 매월 5000원씩의 회비를 내고 있으니 한달 모아야 12만원이 전부다.
『처음엔 닦을때마다 1000원을 냈지만 부담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회원제로 바꿨지요』. 매주 화 목 토요일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의 출입이 뜸한 목공소 앞 계단에 앉아 구두를 닦지만 꼭히 정해진 시간은 없다. 닦을 구두를 계단에 가져다 놓으면 닦은뒤 그 자리에 두면 가져간다.
『처음엔 구두는 닦지 않고 회비만 내는 교사들도 있었지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일을 하는 취지를 설명했지요.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더 가난한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고요』박교사는「후배 선생님들은 구두를 선뜻 내놓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웃어보인다.
구두를 닦에 모은 돈은 장애인 부부를 돕기도 하고 영아원, 행려자 시설, 무의탁 노인 돕기 등에 골고루 사용된다.
박씨는 구두를 닦으며 깊은 신앙체험을 하게 된다. 『구두는 우리 신체중 가장 밑바닥에 있지 않습니까.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남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이 일이 그래서 제겐 의미가 큽니다』
박씨는 구두를 닦을 때마다 주인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친다. 또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달리 할줄 아는 것이 없는 몸이 이런 일을 통해서라도 신앙인의 삶을 드러낼 수 있었으면』하고 자위해 보기도 한다.
『육신의 시력에 안좋으니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주시는가 봅니다』시력이 좋지 않아 몇차례 수술까지 받았던 박교사는 육체적 불편과 고통을 오히려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죠. 다만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불교집안에 시집와서 고생한 집사람에게 미안하다며 불쑥 한마디 던지고는 괜찮다는 기자의 구두를 굳이 벗기고서야 편한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에 평화가 가득히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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