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가 시집 「아득한 여로」(문학세계사/120쪽/1만원)를 펴냈다. 지난 1990년 첫 시집 「일기」 이후 근 20년 만에 발표하는 두 번째 시집이다.
이 대주교는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문예반에서 활동했고,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도 시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이번 시집 머리말에서 “오늘 이 책을 보내면서 시집보낸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말없이 살아주길 바라고 어디서나 맑은 사랑을 전하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썼다.
시집에는 이 대주교가 1960년대 프랑스 리옹신학대학과 파리가톨릭대를 다닐 무렵에 쓴 시부터 최근작까지 50여 편이 6부로 나뉘어 실렸다.
유학 시절 타국에서 겪었던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산·바다·꽃 등 대자연 앞에서 느낀 경외감 등이 정갈하면서도 따뜻한 시어에 담겼다.
특히 시집의 첫 장을 여는 시 ‘자화상’은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인 이 대주교의 소박한 인간미를 엿보게 해준다.
‘나는 눈을 잘 감는다 / 잘 뜨지 못한다 / 눈이 작아서 뜨고 있어도 / 서양 아이들은 날더러 눈을 떠보라며 답답해했다. … 나는 어릴 때 배가 불룩 나온 어른을 보고 / 보기 흉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했었는데 / 지금 내 모양은 / 그때 그 어른과 같아지고 말았다 / 그런데도 자꾸 무엇을 먹고 / 나온 배를 옷으로 가리고 있다. … 나도 분명 한 사람인데 / 이렇게도 갖추지 못한 것이 많다 / 살수록 일그러지는 내 모습을 보며 / 지금이라도 자화상을 그려야 한다….’ (시 ‘자화상’ 중에서)
마지막 6부 ‘예수 그리스도’는 시로 쓴 강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호소력 강한 어법으로 일깨운 ‘예수’ 연작을 비롯해 ‘내 살을 먹어라’, ‘성체(그리스도의 몸)’, ‘천당’ 시편들은 신앙 안에서 시와 교감하며 살아온 이 대주교의 원숙함이 전해지는 작품들이다.
‘…빵을 주는 것만도 사랑인데 / 살을 내어주는 사랑이 있다면 // 물 한 잔이 아니라 피 한 잔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 또 세세대대로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내어주는 피가 있다면 // 이 사랑을 사람이 어찌 다 알아들을 수 있으랴 / 십자가에 달린 하느님을 누가 상상인들 하겠는가?’ (시 ‘성체’ 중에서)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지낸 이태수(아길로) 시인은 이 대주교의 시세계를 ‘그지없는 사랑의 시학’이라고 평했다.
그는 “사람을 향한 이문희 대주교의 하염없는 길 나서기와 꿈꾸기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연민과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그지없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과 일치를 이루려는 순례의 여정들로 넘쳐난다”고 말했다.
※문의 02-702-1800 문학세계사
출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