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무실 여직원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눈물을 삼키고 있는 눈치다. 이유인즉 한 중학생에게 규칙대로 할 것을 요구하였더니 ‘미친X’하며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별안간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찔하다’면서 억울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생각 없이 내 뱉은 아이의 욕 한마디가 이토록 커다란 상처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방송사에서 ‘욕에 중독된 십대들’의 현장을 취재하였는데 97%가 넘는 아이들이 평소 욕을 한다고 대답하였다. 아이들은 “십X 뒤졌어, X발X아, 정말 X나 짜증나네”라는 욕을 거침없이 한다. 물론 TV가 아니라도 평소 아이들에게서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욕들이다. 아이들은 “욕이 없으면 대화가 어색해요” “욕, 다하는데요” “욕 안하면 왕따 되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에서도 성기를 뜻하는 단어가 들어간 욕설들이 마구 등장한다.
‘X발 X또 X또 니미 X발 X또’ ‘지랄하지 말라고’ (어쩌라고, 슈퍼키드)
‘배운 거란 X도 없네. 돈 벌어 먹다가 뒤질 인생’(A-HA, 은지원)
어느 학자는 ‘욕’이 청소년의 하위문화로 정착되면서 문제시 되지 않는다고 한다. 타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면서 저주하는 욕설이 문화라니 혼란스럽다. 영국의 청소년 하위문화는 1970년대 경제 불황 속에서 청소년들만의 복장과 언어와 생활방식으로 기존질서와 구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욕설로 뒤덮인 티셔츠를 입고 불경스럽고 위협적인 스타일로 의식적인 저항을 하였다. 그래서 지배적 윤리와 가치로부터 배격을 당했고 성직자나 학자나 정치인들은 이러한 청소년들을 ‘타락’이라는 죄목으로 비난하였다. 과연 우리도 ‘타락’이라는 죄목으로 우리의 청소년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인터넷은 ‘욕의 바다’라고 할 정도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들로 난무한다. 지상파 방송 역시 심각한 수준의 비속어와 선정적 표현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언젠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2주간 조사한 결과 개그프로그램에서 무려 244건이나 지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선정적 표현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입으로 옮겨진다. 게다가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검사나 판사, 교수나 국가 지도자들의 폭언과 실언, 뇌물수수와 스캔들과 그들이 하는 욕과 비속어도 거르지 않고 공공연하게 터져 나온다. TV나 인터넷은 하루 종일 어른들의 숨겨진 은밀한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서 순진한 아이다움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남들도 다하는데” 하면서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저주하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아이들의 욕설이 영국의 하위문화처럼 의식을 통한 능동적인 저항이라면 좋겠다. 생존의 공간을 찾기 위한 자신들만의 스타일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아이들은 “안 하려고 해도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나와요”라고 말한다. 그저 습관이 되어 생각 없이 욕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정신이 아프다. 억압과 분노. 고통과 좌절, 공포와 절망을 고스란히 담은 심리적 방어기재인 욕설은 아파서 질러대는 아이들의 비명이다. 이러한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도 서글프다. 숨통 막히는 현실에서 욕설을 마구 배설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림자이며 자화상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타락’이라는 죄목을 붙이기 이전에 우리의 죄를 먼저 고백해야겠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손을 잡고 의미 중심의 세상을 보게 하는 언어를 돌려주겠노라고 약속해야겠다.
부모의 모델링은 자녀에게 그 어떤 유전인자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과연 가정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언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게 해주고 있는가? 학교에서 교사는 좋은 언어습관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은 있는가? 교회에서 지도자는 아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사랑의 언어를 습득하도록 도와주는가?
한 처음에 말씀이 있으셨고 그 말씀은 사랑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희망을 주고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언어를 먹으면서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요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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