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입니다. 이제야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카이로의 넝마주이’, ‘빈민의 어머니’로 불리며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해 온 엠마뉘엘 수녀(파리 노틀담 드 시옹 수녀회·1908~2008)의 자서전 「아듀」(엠마뉘엘 수녀/김주경 옮김/오래된미래/540쪽/1만6500원)가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엠마뉘엘 수녀는 사후에 출간하기로 출판사 측과 약속하고, 81세이던 1989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98세가 되던 2006년 이 책을 완성했다. 그가 지난해 10월 만100세를 한 달 앞두고 선종하자 책은「Confessions d’une religieuse」(어느 수녀의 고백)이란 제목의 프랑스어 판으로 출간됐다.
1908년 벨기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엠마뉘엘 수녀는 여섯살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일찍 세상의 고통에 눈을 뜬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그는 스무 살에 파리 노틀담 드 시옹 수녀회에 입회하고, 이후 터키와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프랑스어와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엠마뉘엘 수녀의 꿈은 은퇴한 후인 예순셋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그는 경찰도 위험해서 꺼리는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촌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묵주’만을 무기 삼아 들어간다.
엠마뉘엘 수녀는 그곳에 23년 동안 머물며 학교와 병원을 세워 수천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질병을 몰아냈다. 그가 내민 사랑의 손길은 아프리카 곳곳까지 닿아 수만 명의 아이들을 죽음에서 구하고 행복을 찾아줬다.
그는 훗날 자신의 선택에 대해 “빈민촌에 이르렀을 때 내 평생소원은 실현됐다. 가난한 자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절정이었고, 그 위에는 더 올라갈 아무것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엠마뉘엘 수녀는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서전인 이 책을 통해 여섯살 소녀 시절부터 카이로 빈민촌에서의 삶, 그리고 황혼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자신의 인생을 치열하게 고백한다. 자신의 약점과 치부까지도 드러내는 솔직한 생각들과 내면의 깊은 울림들, 평생을 가난한 친구들의 손을 놓지 않고 하느님만을 따르겠다는 경건한 갈망들이 책장마다 피어난다.
그는 자서전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맺었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 보라. 그러면 거기서 사랑의 불꽃을 발견할 것이다. 그 불꽃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구하는 불꽃이다. 나의 친구인 독자여. 당신을 위해 나의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여전히 위대한 사랑의 계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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