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성당 젊은 신부 아름다운 그 시절 / 가난과 깊은 정이 평생에 그리운데 / 어이해 십자가 지고 명동 언덕 올라섰나 // 불화살 최루탄이 발 앞에 날아와도 / 하느님 모습 닮은 인간이 존엄해 /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 // 김수환 추기경을 겨레가 기리는데 / 때로는 애꿎은 구설에 외로워도 / 세상이 원래 그렇지 여기는 님이여’ (‘김수환 추기경’ 전문)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기 달포 전. 구중서(베네딕토?73) 수원대 명예교수는 시조 한 편을 들고 추기경의 병실을 찾았다. ‘김수환 추기경’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구 교수가 추기경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에서 직접 쓴 작품이었다.
지난해 가을 추기경이 입원한 이래 병문안도 갔었고, 병환이 심할 땐 병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추기경은 곤한 잠에 빠져있었고, 구 교수는 그 시조를 잠든 추기경의 머리맡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중서 교수가 시조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최근 2년간 쓴 59편의 작품을 모아 생애 처음으로 시조집 「불면의 좋은 시간」(책만드는집/102쪽/8000원)을 펴냈다.
그는 “문학평론가로서 40여 년 동안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평가’만 하다가 처음으로 창작에 나섰다”며 “직접 창작한다는 것이 나 자신을 구현하는 데에 더 흔쾌한 자족감을 줬다”고 소감을 전했다.
구 교수가 이번 시조집을 펴낸 데에는 시인 조오현 스님의 권유가 컸다.
“몇 해 전 어느 자리에서 조오현 스님이 한국인으로서 문학을 하는 이는 지금 어느 장르에 속해 있든 시조 몇 편은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한국 시사(侍史)의 근간이자, 우리만의 아름다운 문학 장르인 시조를 그 동안 너무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시조집에는 ‘시조는 시조다워야 한다’는 구 교수의 작품 사상과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신경림 시인의 평가에 따르면 “장강의 흐르는 물처럼 도도하고 넉넉하며, 하늘을 나는 학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작품들이다. 정통 정형시로서의 형식성과 리듬감을 살린 시조 율격에다 절제된 리얼리즘이 자연스럽게 버무려졌다.
시조집 곳곳에 실린 ‘시서화(詩書畵)’들도 눈에 띈다. 구교수가 틈틈이 짬을 내 시조의 배경이 된 장소를 직접 찾아가 그린 수묵화들이다.
구 교수는 “우리의 원래 체질에서 발생하는 리듬에 오늘의 진취적 정신을 담아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 이것이 한국 시조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시조 작업에 계속해서 정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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