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들어갈 수 있을까』 중국 대련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의 보딩패스를 받고도 우리의 마음은 착잡했다. 조금은 북적거리던 공항 면세구역이 조용해지고 비행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자 우리는 초조해졌다. 우리의 초조감을 더욱 부채질 한 것은 도대체 탑승객이 우리와 인도인처럼 보이는 3명의 외국인 외에 눈 씻고 찾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발 시간이 10분여 앞으로 임박하자 일행중 한명이 비행기와 연결된 브리지(통로)의 입구쪽으로 가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통로가 평양행 비행기로 들어가는 브리지였고 우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2백명 이상 탑승규모의 비행기에 모두 8명이 타고 보니 또 다시 마음이 착잡해졌다. 『혹시 손님이 적다고 비행기가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비행기는 우리 일행이 타자마자 이륙을 준비, 출발시간을 5분이나 앞당겨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평양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린다는 「조선말」 안내방송이 그렇게 신기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의전과 예우상 주교님을 「1등석」으로 보내드리긴 했지만 좌석이 조금 넓다는 것 외에 아무런 「특혜」도 받지 못하신 듯 했다. 설탕과 우유를 미리 섞어 타놓은 인스턴트커피 한잔을 대접받으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동안 우리의 「전세 비행기」는 어느덧 평양 순안 공항에 안착했다.
공항에서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흔들며 주교님을 기다리던 오태순 신부님은 결국 눈물을 보였고 이기헌 신부님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 눈물의 의미를 우리 일행만은 알 수가 있었다. 평양 땅을 밟기까지 준비 과정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오신부님의 눈물, 그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을 터였다.
짐을 찾는 과정을 포함, 북한 땅으로의 입성을 위한 절차는 우리가 귀빈실에서 소박한 도착 행사를 치르는 동안 진행된 모양이었다. 주교님의 간략한 도착성명과 조선 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장재철 위원장의 「보다 간략한」 환영사 등 공식 의전을 마친 후 곧 바로 숙소로 향했다.
조용한 공항 이상으로 평양 거리는 한산했다. 부산하고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서만 살던 우리들의 정서로 볼 때 더욱 그랬다. 널찍하고 시원하게 뚫린 도로들, 크다 못해 웅장하기만한 아파트와 각종 기념 건물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평양은 한산보다는 적막이라는 표현이 보다 어울릴 듯 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모두 4대의 검은색 벤츠에 분승하고 또 한대의 벤츠가 선도하는 우리 일행의 행렬은 당연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도로의 사정이 좋은 쪽을 골라 중앙선을 무시한 채 달리는 차량들은 충분한 구경거리가 된 듯 싶었다. 분주하게 어디론가 향해가던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일행의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발길을 멈춘 채 눈길을 주었다.
거의 비어 있는 거리를 약 20분가량 달렸을까 우리가 묵는다는 「서재동 초대소」에 도착했다. 바리케이드를 열어야 들어가는 정문에서부터 북한 땅, 평양등지에서의 우리 일정이 눈앞에 그려졌다.
빌라 형식의 단독 주택 수십 채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서재동 초대소의 풍경은 「사랑을 보다 잘 나누기 위해 온 사람들」이 묵기엔 좀 송구스런 장소 같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사전 협의때 고려호텔로 잡힌 숙소가 초대소로 변경된 것은 어쩌면 방북 기간 중 북측과의 대화나 협의를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자 하나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몰랐다.
전혀 다른 사고, 정서, 관습, 체제, 그리고 사상으로 인한 약간의 혼선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북한 체재 기간중 아주 조금은 터득할 수 있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뉘어 집 두채에 여장을 푼 일행은 「평양식 정식」으로 점심을 들면서 평양과의 어설픈 대면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서로 말은 안했지만 그날 저녁 우리의 기도 주제는 필경 『사랑을 위한 우리의 선택이 진정 옳은 선택이 되기를』이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 감추고 싶은 이야기] 이윤자 편집국장 북한 방문기 둘 :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한 우리의 선택이 진정 옳은 선택이 되기를
‘진짜 들어갈 수 있을까’마음은 착잡
2백명 규모 비행기에 탑승객은 8명
「평양식 정식」으로 평양과 첫 대면
발행일1998-06-21 [제2107호, 10면]

▲ 5월 17일 주일미사 후 장충성당 관계자들과 방북단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