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의 행주대교 북단 입구에 자리한 행주나루터 마을이다. 뱃길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시절에는 제법 번성했던 마을이다. 도로가 뚫리고 다리가 놓이면서 또 기차가 다니면서 나루터로써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주민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300여명의 주민들이 울타리도 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이다. 오래된 교우촌이기도 해 주민의 200여명이 신자다. 나는 공소에 살면서 그들의 신앙도 돌보고 외부 피정지도를 하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어느날 새벽잠을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4시였다. 유방지거 할아버지(88세)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병자성사를 두 번이나 주었던지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일찍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가보니 할아버지의 시신은 깨끗이 모셔져 있고 대학생 손자가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 생전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데 손자의 행동이 시선을 끌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손자는 자리를 뜰 기미도 없이 할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꼭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손질하듯 정성을 다해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가끔은 얼굴에 묻은 티도 닦아내는 손자의 모습이 내게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한국생활 45년만에 처음 보는 감동적인 애틋한 이별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신을 가까이 하기에 꺼려하지 않는가. 만지기는 더욱 싫어한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생전에 어떻게 살았기에 저토록 손자의 지극 정성을 받았을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할아버지는 참으로 인자하고 순수한 분이셨다. 동네 사람들이 술과 화투를 좋아하지만 할아버지는 전혀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웃으시며 잘 어울렸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깨끗했던 할아버지의 삶이 손자를 효자로 만들지 않았을까. 할아버지의 고매한 삶이 손자에게 이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떠올려본다.
[선교사들이 들려주는 한국, 한국교회 사랑하기] 2. 할아버지의 죽음과 손자/두봉 주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별 모습, 한국생활 45년만에 처음 보는 감동적인 애틋한 이별이었다.
발행일1999-04-11 [제2146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