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낼 줄 모르고 언제든 따뜻하게 맞아주는 최영철(바오로)씨를 아이들은 삼촌이라 부른다. 오랜 고난의 삶을 통해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최영철씨. 그러나 그가 사랑을 배워온 삶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돌릴 수밖에 없을 험난함 그 자체였다.
최영철, 수십년간 불리워 온 최씨의 이름은 정작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고아원에서 함께 살던 형의 부탁으로 장난삼아 대신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게 나중에는 이름뿐 아니라 전과까지 물려받게 되었다. 그에게는 부모가 지어준 유재성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다. 인민군 간호장교였다 포로가 된 어머니와 미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난 최씨는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서른여덟이나 아홉 쯤 됐을 거라고 짐작할 뿐. 이태원에서 태어난 최씨는 어머니가 죽기 전 미군부대에 버려지고 다시 고아원에 맡겨졌다.
5-6년간의 고아원 생활 끝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작정 고아원을 뛰쳐나와 배회하던 최씨는 당시 부랑인 시설로 악명 높았던 인천 앞바다 선감도에 잡혀간다. 하루 한끼도 먹기 힘든 지옥같은 생활에서 그를 구해준 것은 한 외국인 신부. 그 때의 인연으로 최씨는 14살에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열아홉 살 나던 해 그는 충청도 금산, 옥천 등지를 오가며 고추를 사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그러나 고추파동으로 사기혐의를 쓰고 1년 6개월형을 산다. 출소 후 제 권리를 찾으려 항의한다는 것이 그만 그를 삼청교육대로 보내버렸다. 교육 후 다시 청송감호소 행.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85년,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이태원을 찾아 미군 클럽에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 트럭운전수로 취직했다. 이 때 처음 사랑을 느낀 여인을 만나 재수생인 그를 간호대학에 입학시켰다. 삶이 보람찼던 시기, 89년부터는 감옥에서 틈틈이 익힌 서각기술로 성물점에 서각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최씨의 서각이 유일하다시피해 적잖은 돈을 모으고 안산에 공장까지 지으며 전국 물량의 반 이상을 독점했다. 그러나 공장을 확장하다 실패하고 전과자라는 명패로 징역 1년 보호감호 7년의 엄청난 형을 선고받는다. 첫사랑마저 떠나가고 자살과 복수의 생각만이 독방 속에 가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알고나 보자" 암흑같은 삶 속에서 감호소의 검정고시반에 들어간 것이 그가 갖게된 배움의 첫 기회였다. 92년부터 초, 중, 고교 검정고시를 내리 합격, 전과목 만점의 영예 또한 안았다. 학사고시를 준비하던 97년 2월 최씨는 사면조치로 새롭게 열린 하늘을 본다. 감옥문을 나서 독학사의 꿈을 키우며 택시 운전을 하던 최씨는 우연히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김정수 신부를 만난다.
김신부가 처음 만나 한 말은 "우리 친구하자" 그 때서야 최씨는 친구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97년 11월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나눔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친구(!) 김신부의 배려였다. 낮에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밤에는 택시를 몰았다. 삶의 무게에 늘 피곤했던 그였지만 기쁨과 희열이 그의 삶을 전율케 했다. 그러던 지난 98년 2월 1일, 최씨는 아이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나누기 위해 아끼던 삶의 자산인 택시를 반납했다. 아이들과 공부하는 일, 먹고 놀고 자는 일 모두 그에겐 어떤 일보다 큰 일이 됐다. 아이들에게 조각과 서각을 가르치는 일도 최씨의 몫이 됐다. 삶을 함께 나누는 셈이다.
가톨릭서각인동인 회장이기도 한 그가 지난해 2월부터 반년에 걸쳐 아이들과 향나무로 만든 열두폭 서각 병풍은 아이들과 최씨의 삶의 역사가 녹아있다. IMF가 빚은 재정난으로 나눔의 집 식구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는 가운데 최씨는 최근 애지중지하던 이 작품을 내놓았다. 자신이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가 사랑의 씨를 뿌리던 들판은 이제 외로운 들판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일하며 붐비는 들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도움주실분=살레시오 나눔의 집 (02)693-6811>
[사랑으로 산다] 살레시오 나눔의 집 최영철씨
“고난 통해 사랑하는 법 배워”
고아원·교도소 전전하단 나눔의 집서 참 삶의 의미 깨달아
“사랑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발행일1999-03-14 [제2142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