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일치를 외치지만 진전이 없는 것은 담부터 쌓고 허물기를 꺼리는데 있다고 봐요. 마음을 열지 않고 머리로만 대화를 하려다 보니 일치를 이루기가 힘들 수 밖에요"
67세의 나이로는 믿기 힘든 고운 얼굴에 수줍은 듯 나즈막하게 내뱉는 말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해마다 교회 일치주간은 돌아오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허신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대화의 전제가 부족하다"는 것. 대화를 할 자세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상대를 알고자 하는 관심,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허신부는 덧붙인다.
'초교파 영성연구모임'을 결성, 10년째 참가하고 있는 허성신부 (부산 장산본당 주임). 일치를 위한 그의 노력은 1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래본당 주임시절 성당 앞 예수교 장로회 수안교회의 목사님과 부목사님이 어려운 부탁이 있다며 찾아왔어요. 지금의 예배당이 너무 좁아 확장 공사를 하는데 지하실이 완공될 때까지 두서너달만 성당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는거였어요. 주교님을 찾아가 거짓말을 조금 보태 어렵게 승낙을 얻어냈지요"
개신교 신자들을 위해 10시 반이던 교중미사를 10시로 당기고 11시부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신부와 목사들이, 또 사목위원과 장로 집사들이, 성가대원과 찬양대원들이, 우리 신자들과 그들 신자들이 가까워지고 대화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게 됐지요. 개신교 신자 중 많은 이들이 미사에도 참례하고 강론도 듣고 해서 '천주교는 마리아교'라는 오해에서 벗어났고 제게 영적 상담을 요청해 오기도 했어요"
이것이 계기가 돼 개신교 목사와 성공회 신부 등 타교파 성직자들과 교분을 쌓게 됐고 89년 교회 일치주간에 '초교파 영성연구모임'이 탄생했다.
"몇몇 목사님들과 성공회 정교회 신부님들이 참여했는데 매월 한차례씩 돌아가며 자기 교파의 장점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었죠. 정말 귀하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발표할 강의 내용이 딸려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어서 요즘은 부담없이 만나 등산을 가기도 하고 마음 내키면 찬미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해요"
더욱 흥미로운 것은 교구 성직자 수도자 성령묵상회에 개신교 목사와 성공회 신부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 성사시킨 일. 반대의견이 없지 않았지만 시험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허신부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결과는 대성공.
"묵상회에 참가했던 목사님들이 이제서야 목사안수를 받은 느낌이라며 감격해했지요". 이것이 인연이 돼 허신부는 감리교회와 성공회 성당에서 7주 과정의 성령묵상회를 두차례씩 실시하고 은혜의 밤도 가졌다.
한번 트인 물꼬는 자연스럽게 확산돼 갔다. 강원도 용화에 있는 정교회 피정의 집에서 각 교파 신자들이 가족 단위로 야영을 하면서 4박 5일간 수련회를 가졌던 일, 목사와 성공회 신부 가족들, 본당 신자 몇사람과 함께 강원도 황지에 있는 성공회 수도원인 예수원에서 2박 3일간 지냈던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들이다.
최근엔 허신부가 참석하고 있는 마리아 사제운동 다락방 모임에 성공회 신부 한명이 동참하는 경사도 생겼다. "얼마전 지은 지 반년이 안되는 성공회 성당에 부임하신 신부님이 성당에 모실 성모상을 하나 기증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너무 기뻐 꾸리아 간부들의 협조를 얻어 성모상을 마련해 가서 봉헌했지요. 함께 간 한 자매님은 사제관에도 성모상이 보이지 않는다며 예쁜 성모자상을 구해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획일적인 일치지향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허신부는 교회일치를 교향악에, 부모의 심정에 비유한다. "한가지 소리만 내어서는 좋은 음악이 될 수 없고 다양한 소리들이 조화를 이룰때 아름다운 음악이 돼요. 또 여러 자녀들이 제각각 소질을 살려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들이지요. 자기 것만 옳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봐요. 교파마다의 장점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류에 봉사한다면 우리 모두가, 세상 전체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수년전 가졌던 초교파 가족 수련회를 기회가 된다면 다시 추진해 볼 생각"이라는 허신부의 소박한 꿈이 한국교회의 '교회일치'노력에 작은 밀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일치주간」에 만난 사람들] 10년째 일치교류 갖고 있는 허성 신부 (부산 장산본당주임)
교회 일치를 향해 뛴다
「초교파 영성연구모임」결성…함께 등산·기도
교구 성령묵상회에 목사·성공회 신부도 참가
“교회 일치는 다양한 소리가 조화 이루는 교향악과 같아 ”
발행일1999-01-17 [제2135호, 13면]

▲ 감리교회에서 목사, 정교회 신부 성공회 신부 등이 참가한 가운데 허성 신부 지도로 열린 성령쇄신 묵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