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을 다녀간 김경환 몬시뇰의 선종 소식은 너무나 뜻밖이어서 주변에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 고인은 건장한 체구에 박학다식한 식견, 소탈하고 자상한 성품으로 늘 주변의 존경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지난 95년 효성여대와 대구 가톨릭대의 통합으로 출범한 「대구효성가톨릭대」 초대총장으로 부임해 경쟁력 있는 대학의 기초를 놓는데 크게 기여했다. 대학교육의 개방화, 세계화, 정보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김 몬시뇰은 재임중 프랑스 릴대학과 자매결연, 미국 GMI공과대학과의 교류협정체결 등 10개국 16개 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실무교육 강화 차원에서는 삼성상용차, 삼보컴퓨터 등 18개 협력기관과 산곀?연 협동조인을 체결,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도 했다. 마침내 98년 대학종합평가에서 최우수대학으로 평가받는 업적을 남겼다.
56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 10여년 신학을 공부하면서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 몬시뇰은 당시 파리 한국학생을 지도하면서 교육자의 길로도 들어섰다. 이후 광주 가톨릭대학 교수를 거쳐 대구효가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한편 가톨릭신문 주간(69~74년)으로 부임하면서 언론에 입문한 고인은 이후 가톨릭 방송국 준비위원장을 맡았으며 89년부터 92년까지는 매일신문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민주언론 발전에 공헌했다. 사제로서 뿐 아니라 학자요 교육자이며 언론인으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긴 고인은 3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56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에 유학, 리옹대·리옹가톨릭대·파리가톨릭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72년부터 교구 까리따스 책임과 가톨릭문화관 관장을 역임했으며 계산본당 수석보좌, 윤일·옥산본당 주임으로 본당사목에도 몸담았었다.
95년 몬시뇰에 서임됐으며 같은해 경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편 고인과 동기인 박병원 신부는 장례미사 강론을 통해 김 몬시뇰을 『큰 키에 다재다능하고 남달리 총명하며 유머감각이 뛰어났다』고 회고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그저 참담한 심정일 뿐이나 다시 만날 것을 믿기에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김몬시뇰을 운구해 대구에 온 베이사이드 본당 정태영 회장은 『큰 신부님을 가슴에 묻고, 아버지를 여윈 죄인으로 무릎꿇고 용서를 청한다』는 고별사를 했다.
■ 김경환 몬시뇰 약력
△33년 9월 11일 경북 경주 출생 △62년 사제수품 △63년 프랑스 파리 한국학생 지도신부 △69년 가톨릭 액션협의회 지도신부·가톨릭신문사 주간 △72년 교구 까리따스 책임·가톨릭문화관 관장 △75년 광주가톨릭대학 교수 △81년 계산본당 수석보좌 △83년 윤일본당 주임 △87년 옥산본당 주임 △88년 가톨릭 방송국 준비 △89년 매일신문사 사장 △93년 교포사목(미국) △95년 대구효성가톨릭대 총장 △95년 몬시뇰 서임 △98년 해외사목(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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