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홍윤숙(데레사.75)선생이 열세번째 시집 「마지막 공부」(분도)를 내놓았다. 인생의 칠십 고개를 훌쩍 넘겨버린 노시인이 내건 「마지막」이란 단어는 엄숙하고 엄정한 마음으로 시집을 펼쳐들게 만든다.
『무거운 몸 함께 갈 수 없어/자리에 눕혀 놓고/마음 홀로 문을 나서면/동서남북 캄캄한 밤/길도 없는 하늘에 별 하나 뜰까… 한 생애 무거운 살 벗어놓고/고통의 뼈도 내려 놓고 가볍게 가볍게 깃털 하나로/약속된 시간 지체없이 돌아가는/귀향의 길마침내 알리라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그리고 귀 열리리라/삶은 끝없이 꾸는 꿈이고/죽음은 비로소 깨어나는 현실임을』(마지막 공부 중).
삶의 마지막에 대한 단상과 철학이 담긴 「마지막 공부」는 94년 발간된 「낙법놀이」의 연장선에 있는 시집. 신앙시집 「실낙원의 아침」과 꽃을 소재로 한 「조선의 꽃」이후 작품세계의 커다란 흐름이 이 시집으로 이어진다. 「마지막」「떨어짐」「죽음」….
이러한 말을 거리낌없이 쓸 수 있는 것은 꾸준한 시작업을 통해 인식된, 삶은 곧 「꿈」이요 「놀이」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88년부터 「놀이」를 제목으로 하는 연작시를 써왔습니다. 이 시집 「마지막 공부」에도 30여편의 연작시가 있지요. 돌이켜 보면 놀이에 불과한 듯 여겨지는 사건들에 집착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일장춘몽」이라는 말처럼 죽음 앞에서 곧 사라질 것들인데…』
「영혼의 날개 위에 「무」외에 무엇을 실을 수 있을까」하고 반문하는 시인. 하지만 허무를 넘어서는 삶의 희망을 위해 시인은 힘이 닿는 한 시를 쓴다.
『사는 일 날마다 비탈 아니면 수렁이지만/이제도 내가 해야할 일은 …/한편의 시가 어떻게 내게로/다시 올까 기다리는 일이다/기다리며 허공에 등불을 달아/혼 속의 길 환히 비춰보는 일이다//…한편의 시가 내게로 오는 그 황홀한 시간을 기다리며 산다』('한 편의 시가' 중).
그러기에 시인은 시 20여편을 이 시집에 엮지 않고 고이 남겨 두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 권의 시집을 더 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시를 남겨두는 것은 곧 희망을 남겨두는 일이기에.
『종일을 걸어서/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은/해지는 저녁이다… 순간 세계는 무한히 큰 가슴을 열어/나를 품어주고/나는 시보다 아름다운 생의 흐느낌에/ 가슴 저려온다//지금 이 곳에 있음에/이 땅에 있음에 (「세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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