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어미는 내 수족(手足)이에요. 식구들 생계 책임지면서 중풍으로 거동 못하는 시어미를 위해 식사준비는 물론 목욕 이발 등 수발을 다 들어주니 그만한 효부가 어디있겠습니까"
서울 가회동본당 정재훈(가타리나)씨의 시어머니 권대복(로사.88)씨의 며느리 칭찬은 그칠 줄 모른다. '어른을 알아볼 줄 아는 며느리' '몸놀림이 재바르고 음식솜씨도 뛰어나다'며 며느리 정재훈씨를 칭찬하는 로사 할머니.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면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신의 며느리이지만 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밝힌다.
로사 할머니가 얘기하는 상(償)이란 서울시에서 수여한 효부(孝婦)상을 말한다. 며느리 정재훈씨는 지난 5월 8일 서울시로부터 효부상 특별상을 받았다. '어머니가 워낙 잘해주셨고 예전부터 성격이 잘 맞아서 사이좋게 지냈다'는 정재훈씨는 '내리사랑'이라고 건강하실 때 사랑으로 대해주셨던 모습에 응답할 뿐이고 부모님께 잘해드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정재훈씨는 서울 광장시장 내 한복집에서 한복 만드는 일을 보조하고 있다. 아침일찍 일어나 로사 할머니와 시아버지 인광옥(요한.87)씨, 남편, 두 아들의 식사준비를 해놓고 한복집에 출근, 자정이 다 되는 시간까지 한복 바느질과 씨름을 하는 정씨는 그러한 자신의 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효부상을 받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덤덤하게 답했다.
정씨의 시어머니 로사할머니가 중풍으로 자리에 누운 것은 10년전. 한 1년간은 화장실 출입도 못하는 처지였는데 요즘은 화장실과 식사 해결은 본인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처음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했을 때 정씨는 한복집 일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시어머니 시중에만 매달렸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거동을 할 수 있어 한복집 일을 계속하는데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얼마전 남편의 실직으로 집안의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해야하는 이유에서도 정씨의 한복집 일터는 매우 소중하다.
정씨가 일하는 한복집을 운영하는 이정이(실비아)씨는'자신도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처지이지만 정씨는 특히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느낀다'며 '요즘 세태에 노인들을 위해 밥상 차리는 것조차 지겨워하는 며느리들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시어머니를 자신의 팔다리로 여기는 정씨의 마음가짐이 참으로 상받을만 하다'고 말을 거들었다. 세칭 큰며느리도 아닌 상황에서 불평없이 아흔줄에 접어든 시부모를 모시는 것이 참으로 대견하다고 이씨는 덧붙인다. 어릴적부터 장모님, 즉 정씨의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집안의 영향인지 나이드신 노인들을 돌보는 것이 짐스럽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씨.
82년 혼자 성당을 찾아가 영세한 후 전 집안 식구들을 교회로 인도 신자화 시킨 정재훈씨는 그러나 요즈음 바쁜 일과로 주일을 지키는 것마저 쉽지 않아 하느님께 여간 죄송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도 구역반모임 등 여건이 되는대로 본당일에 참석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처음 서울시로부터 효부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상받는 이들 욕이나 먹게 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에 부담을 느껴 거절하고 싶었다는 정씨는 앞으로 다른 큰 포부나 희망사항보다 시부모님들이 '마음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돌봐드리고 싶다고 소박한 바램을 표명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정씨 특유(?)의 긍정적 태도는 곧바로 드러난다. '한복이라는 것이 결혼식 회갑 등 좋은 일에만 갈 때 입는 옷이잖아요. 손님들이 입어보고 만족스러워 할 때는 제가 잔치에 가는 것 처럼 기쁘답니다. 수입도 생기고 칭찬도 받고 얼마나 좋아요'.
본인이 경영하는 한복집 마련이 희망사항이기도 하련만 정씨는 정작 큰욕심이 없단다. 재능있고 좋은 이들을 만나 도우며 함께 일하는 것도 좋은 몫일 수 있다는 것이 정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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