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1등급 하반신 마비…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하루 하루 절망이 밀어닥쳤다. “주님,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주셨나요” 오랫동안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내 스스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나누고 싶습니다”
3월 20일 오후 1시 원주 치악체육관. 원주에 연고지를 둔 프로농구단 나래블루버드의 98-99 시즌 플레이오프 홈 경기를 보기 위해 서둘러 자리잡은 관중들 앞에 색다른 오픈경기가 하나 펼쳐졌다.
휠체어농구단 시범경기. 이틀전인 18일 창단된 강원드림휠체어농구단이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속의 다우팀을 초청한 것. 시범경기를 통해 「강원도에도 이런 농구팀이 있다」는, 나아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의 경기장에서 농구를 즐길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휠체어에 앉아서 무슨 농구를?」하며 의아해 하던 관중들은 호기심 반 동정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비록 허재 선수와 같은 현란한 드리블과 기막힌 슛은 없지만 나름대로 정교한 패스와 짜임새 있는 경기운영은 점차 관중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내가 저만큼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과 함께 가볍게(?) 보았던 휠체어농구 즉 장애인농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저들도 우리와 같구나.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는 시간이었다.
원주교구 백학현 신부. 강원드림휠체어농구단의 창단 멤버다. 시범경기에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한몫했다. 비록 교회 행사가 아니라 알아주는 사람이 적었지만 애당초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뛰어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유롭다. 성직자로서의 체통(?)을 벗어버리고 마음껏 뛰다보면 통증도 사라지고 장(臟) 기능도 좋아져 기분전환에 그만이다.
그렇다고 자유를 찾아서, 건강을 위해서만 농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배려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2년전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전 백신부 역시 운동을 좋아한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농구공을 잡아본 기억은 별로 없다. 가장 멀리했던 운동이 농구가 아니었나 싶다. 사고 후 2년여 투병과 재활치료에 열중해오던 중 휠체어농구단 창단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함께 하면 서로에게 힘이 될 것 같아 합류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제외되거나 뒤처진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장애인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또 장애인들에게는 내 스스로가 열심히 적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나누고 싶습니다』
스포츠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팀워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어서 장애인들이 자활의지를 나누고 단합할 수 있는 좋은 매체다. 또한 사회에 장애인의 존재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신부는 장애인들이 보다 적극적인 운동으로 존재를 드러내길 바란다. 『장애인들이 혼자 집에 있으면 침체됩니다. 스스로 의기소침해지고 더욱더 외출을 꺼리게 되지요』
백신부 스스로 성직자의 신분으로 선수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정기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시합을 앞두고는 합숙훈련도 해야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은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필요성이 절실했기에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까지는 최대한 시간을 내 함께 할 예정이다.
97년 2월 사제품을 받은 백학현 신부. 서품이 있기까지의 수많은 기도에 보답하기 위해 본당 순회에 나섰다. 10일 동안 30여개 본당을 다니며 미사를 봉헌하고 지친 몸을 운전대에 의지한 채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까워지면서 긴장이 풀리고 무리한 강행군에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다. 깜박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쾅」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차는 논둑에 처박혔고 몸은 힘없이 반으로 접혔다. 진단결과는 중추골절, 장애 1등급 판정을 받았다. 1년여의 투병생활. 하반신 마비 증세는 회복기미가 없었다. 하루 하루 절망이 밀어닥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신자들에게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위로해 돌려보내야 했다.
『주님,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주셨나요. 이 고통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퇴원 후 지난 1년은 정신지체 장애아 시설인 「천사들의 집」에 머물면서 물리치료 등 재활치료를 받았다. 장애아들과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들과 함께 살고,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소명」임을 깨닫게 됐다. 2학기부터는 대학원에 진학,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알아야 장애인 사목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천사들의 집」 부원장으로 보직도 받았다. 업무 파악도 해야되고, 진학 준비도 해야 되고, 농구선수로서 연습과 시합에도 나가야 한다. 유난히 따르는 「천사들의 집」 아이들과도 놀아줘야 되고 그들과 함께 미사도 드려야 한다. 장애인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 교회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도 자주 찾는다. 하는 일로 보아서는 일반인들도 해내기 벅찬 일과들이다.
백신부는 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 줄 것을 바라기 전에 장애인 스스로가 적극적인 삶을 통해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자기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장애 전의 삶에 묶여 살지 말고 현실에 부딪치면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이다. 『제발 좌절하지 마세요』. 백학현 신부가 같은 장애인들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말이다.
■ 휠체어 농구란?
1945년 영국 스톡맨디빌 척수손상센터 소장 굿맨 박사가 재활수단의 하나로 시작했다.
1979년 미국에서 협회가 설립되어 경기를 시작하였고 현재 세계 77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4년 삼육팀 창단으로 시작되었고 지금은 9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1997년 4월 한국휠체어농구연맹이 창립되어 국내외 많은 경기를 주관하고 있다. 공식경기는 1985년 10월 전국장애인 체육대회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매년 회장배 등 6개의 국제대회가 치러지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방콕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대회에 참가해 우승하기도 했다.
백학현 신부가 창단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강원드림휠체어농구단은 국내 11번째 창단팀. 강원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장애인 문화나 스포츠가 미미한 것을 안타까게 여긴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강원장애인스포츠후원회」(회장=이영희)를 결성하고 첫 사업으로 농구단을 창단했다. 경기용 튈체어 1대 값이 300만원. 시합을 앞둔 합숙훈련이나 장거리 이동 등에 적지 않은 유지비가 든다.
※ㅎ 원문의=(0371)741-1421, 한빛은행 111-012942-02-202 예금주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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