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직후인 1953년 폐허더미의 한국에 도착 45년여를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 여성들과 함께 해온 막달레나의 집 책임자 문요안나수녀(메리놀회)가 고희의 나이에 신학석사 유학길에 오른다.
1월 11일 김수환추기경을 모시고 막달레나의 집에서 조촐하게 고희연을 치른 문요안나수녀는 이를 마치자마자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소재 크리에이션 스피리추얼리티 대학교 동양학부에서 창조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본국 귀국길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본원에도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미안하고 특히 막달레나의 집을 떠나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현재 그 운영도 잘 이루어지고 있고 운영위원회도 마련돼 있으니 큰 걱정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날까지 늘 마음으로 함께할 것입니다"
문수녀가 70을 넘은 나이에 신학공부를 결심한 것은 앞으로 북한선교에 나서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선교사로서 거듭 나려면 신학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됐다는 것이다.
간호학을 전공한 문수녀는 한국에 온 후 병원과 노동자 여성복지 관련 활동을 해왔는데 92년부터 4년간 서울 메릴랜드대학교 분교에서 심리학 사회학공부를 한 경험이 있어 '나이들어 공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있었단다.
"창조신학을 택한 것은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 문화 여러 인종안에 깃든 하느님의 영성을 배우는 것은 선교사 입장에서 무척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공부 후 하느님이 원하시면 북한에 꼭 가서 선교를 하고프다는 문수녀는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남한에 있게 되더라도 소외여성들과 함께 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와서 '적게 주고 말로 받는 인정의 후덕함'을 가장 많이 느겼다는 문수녀. 없는 사람들끼리의 나눔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험할 수 있었다고 덧붙인 문수녀는 "그간의 한국생활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진정 모든 이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며 "지켜봐준 주위의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제 가면 영구귀국 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들에 대해 문수녀는 "죽어도 한국에서 죽어야지요. 이제 한국은 제나라입니다"고 선교사다운 명쾌한 답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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