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하면 「박해」가 떠오른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산으로 골짜기로 숨어든 선조들. 호구지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발에 밟히는 흙으로 그릇을 빚고 손에 잡히는 나무로 구워 내다 파는 일이었다. 힘든 삶이었지만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단순히 음식 담은 그릇을 만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옹기에 물고기나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어 그들의 신심을 담았고, 교우들끼리는 말 없이도 한 형제자매임을 알리는 증표가 되게 했다. 장소가 마땅찮거나 박해가 심할 때면 가마굴 안에 숨어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이렇듯 옹기는 박해시대 끊길 듯 한 신앙의 명맥을 잇게 하는 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 생활 깊숙이 없어서는 안 될 생활용기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없어도 되는 것」으로 바꾸기도 하는 것. 플라스틱 용기가 쏟아져 나오고 냉장고가 일반화되면서, 생활환경의 변화로 식품저장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급기야 87년 납 검출 파동 사건이 불거지면서 옹기는 급속도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배요섭(요셉ㆍ71ㆍ서울 신내동본당)씨와 송성열(프란치스코ㆍ72ㆍ서울 신내동본당)씨.
하느님이 주신 천직으로 알고 한평생 묵묵히 옹기만을 구워왔지만 사람과 멀어지는 그릇을 더 이상 만들 힘이 나지 않았다. 한 우물만 파온 덕에 경지에 올랐다며 주위에서 「장인」이니 「명장」이니 「명인」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주지만 다 부질없어 보였다.
그러나 배요섭씨의 아들 연식(바오로ㆍ42)씨는 전통 옹기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가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전통 푸레토기. 유약이나 잿물을 입히지 않고서도 유막을 형성하고, 질박한 외양에 통기성 방부성이 뛰어나며 자연으로의 환원성까지 갖춘 완전 무공해 토기.
세 사람은 10년간 매달렸다. 시골 장독대나 뒤뜰에서 종종 볼 수는 있으나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해방 후 맥이 끊긴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운이 닿았던가. 마지막 기능 보유자로 알려진 고(故) 안승근씨를 수소문해 찾을 수 있었고 송성열씨는 그의 공방에서 살기도 했다.
『「푸레」라는 말은 소금을 뿌려 재를 녹인다는 말입니다. 즉 토기를 굽는 과정에 소금을 뿌려주면 자연스럽게 재가 달라붙고 이것이 녹아 유막을 형성하게 됩니다』
토기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도자기 실습장 「도자골 달뫼」(0346―593―0566)도 마련했다. 누구나 쉽게 흙을 만져보고 자기작품을 만들어 보면서 우리 전통 문화를 접하게 했다. 학원ㆍ유치원ㆍ초중고교ㆍ대학생 그리고 주부를 대상으로 1일 체험반, 주말 가족반, 직장인반 등을 운영하고 장기수강자에게는 전시기회도 주어진다.
『차라리 외국에서 더 가치를 알아주고 있습니다. 수몰 지역에 버려진 장독 같은 옛 물건을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일본인들이 와서 다 주워가지요. 옹기는 우리 삶과 함께 해온 삶의 동반자입니다. 누군가 과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옹기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사실 배요섭씨는 옹기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86년부터 92년까지 4차례나 미국에 가서 한국식 가마를 지어주고, 옹기 제작법을 전수하는 등 문화외교를 펼쳤다. 하버드대, 타우슨 주립대 등 20여개 대학을 순회하며 한국 전통도자 워크숍, 슬라이드쇼, 토론 등을 가지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전파한 것.
배요섭씨와 송성열씨는 몇 남지 않은 옹기장이다. 특히 불때기, 가마쌓기, 대독제작의 기법을 한꺼번에 지닌 명인으로 대접받고 있다. 아마도 서울의 마지막 남은 옹기장이로 짐작되는 이들은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전통 문화의 맥을 잇고자, 나아가 현대 감각에 맞는 토기 문화 창출을 위해 흙을 이기고 물레를 돌리며 가마 앞에 앉아 불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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