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마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라.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연중 제 19주일 복음 중에서, 루가 12장 35-37절)
공경하올 교구장님께!
안녕하시온지요? 저희는 필리핀 민다나오(Mindanaw) 지역에서 골롬반 지원 사제로 사목중인 이효언 펠릭스와 조해붕 요셉 신부입니다. 늦게나마 새로이 교구장님으로 착좌하심을 진심으로 경축하옵니다.
저희는 92년 7월 수품자로서 97년 3월에 이곳 필리핀에 왔습니다. 지역적인 특성상 뒤늦게 받아본 교회신문을 통해서 새로운 교구장님의 착좌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스럽게도 이렇게 서신으로나마 안부를 여쭙게 됐습니다.
저희가 이곳 필리핀에 온지도 어느 사이에 일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지나는 동안 저희는 처음 필리핀 마닐라로 와서 약 4개월 반 동안 영어공부를 하고 그 후 민다나오라는 지역에서 6개월간의 세부아노(Sebuano)를 배운 뒤에 각자의 소임지에서 골롬반 본당신부와 함께 지역 사목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있는 이곳은 루존(Luzon) 지역인 마닐라와는 분위기나 상황이 달라서 무스림 (muslim) 교도소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그리고 작은 분포의 토속종교를 가진 이들이 섞여 살고 있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골롬반 선교회를 비롯해서 여러 선교회들이 수고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효언 펠릭스 신부는 카가얀 데 오로(Cagayan de Oro) 교구의 외곽 지역인 아구산(Agusan)이라는 골롬반 본당에서 일하고 저는 파가디안(Pagadian) 교구의 외곽 지역인 미드사립(Midsalip) 이라는 본당에 있습니다. 대주교님께서도 잘 아시겠듯이 필리핀교회의 상황과 한국교회의 상황은 많은 차이가 있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한국교회의 새로운 것들도 이들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중에 있습니다. 이곳은 신자들은 많은데 이들을 돕고 관리할 신부는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한 동네의 인구가 5만명인데 80%가 신자이고, 한 본당에 작은 동네별로 자기들 나름대로의 공소를 갖고 있어서 보통 공소만도 40-50개 정도가 됩니다. 이 공소를 돌면서 미사만 드리는데도 몇 개월씩 걸립니다. 이러니 전통적으로 지녀온 주일미사에 대한 개념은 있지만 신심적인 측면에서는 신비적인 것들에 더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형편으로 보입니다. 물론 각 본당이나 교구별로 나름대로의 사목적인 방침이 있어서 이 방침대로 하지만 그래도 한국적인 상황을 기대하거나 생각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곳에서도 아직은 그리 능통하지 못한 말과 더운 기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먼 옛날에 선교를 위해 한국에서 일했던 선교사들을 생각하고, 또한 박해 중에서도 선조들이 끝까지 지녔던 신앙의 어려움 등을 생각하며 새로운 용기를 갖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 주교님께서도 저희를 잊지 마시고 기도 중에 기억하여 주시면, 부족하지만 주님 안에서 노력하는 저희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주교님께서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시느라 바쁘시리라는 생각을 하며 저희도 교구장님을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안에 풍성한 은총이 대주교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1998년 8월 25일
필리핀 Cagayan de Oro 교구 Agusan에서 이효언 펠릭스 신부와 Pagadian 교구Midsalip에서 조해붕 요셉 신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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