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서의 남녀 인간의 창조를 보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창세 1, 27).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 21~23). 1, 1~2, 4a까지는 사제계의 것이고 2, 4b~25까지는 야훼계의 것으로써 스토리가 서로 차이가 나는 창조 이야기를 나란히 엮어놓았다. 천천히 잘 읽어보면 한국말 번역문장에서도 특징을 알 수가 있다.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우주 공간에 메아리 되어 울리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제관계 성서저자는 이같이 근엄하고 장중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반면 야훼계의 기록에서는 하느님을 매번 「야훼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야훼를 마치 사람을 그려내듯 동산지기나 농장주인 같은 모습으로 그의 구체적 생각과 행동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꾼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학파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을 빚어 만드셨다」는 점이다. 다른 식물, 동물들은 그저 『돋아나거라』『생겨나거라』하셨지만 인간창조에 있어서는 유일하게 「지어내시다」 「빚어만드시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닮은 존재로서의 남자와 여자를 그냥 생겨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심혈을 기울여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혼을 불어넣으셨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사제계와 야훼계의 창조 순서를 비교해보겠다.
▶사제계 (1, 1~2, 4a)
첫째날 : 빛, 낮과 밤
둘째날 : 하늘과 바다
셋째날 : 땅과 식물
네째날 : 해, 달, 별
다섯째날 : 새, 물고기
여섯째날 : 동물, 남자와 여자
▶야훼계 (2, 4b~25)
1. 진흙으로 아담을 빚어 만드심
2. 에덴동산을 마련하심
3. 온갖 과일 나무들
4.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생명나무
5. 들짐승과 공중의 새
6.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심
야훼계는 제관계처럼 첫째날, 둘째날 같은 날 수 표시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신 순서를 매겨보니 우연히도 6이라는 숫자안에서 창조작업이 끝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양쪽 다 여자의 창조가 맨 마지막에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모든 창조물 중 최후에 완성된 존재가 여성이다. 마지막 작품이란, 그만큼 공들인 작품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여성은 하느님의 야심작이다! 최고의 야심작인 여성이 없는 가정, 인류사회는 상상하기도 싫은 사막, 황무지가 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힘과 권력이 지배하던 고대 가부장적 사회안에서 여성은 항상 소외와 착취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이런 세계에서 성서 저자가 남녀의 창조를 똑같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엄한 존재로 그려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남성의 갈빗대가 남성의 머리나 발이 아닌 몸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아서 서로는 대등한 동반자이지 위 아래로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대신학에서는 좥하느님의 모성좦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지만 여성과 남성이라는 양성의 아름다움을 다 갖고 계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할 때 하느님의 모상을, 그분의 영광스런 모습을 더 잘 반영할 수가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끌림을 받는 것은 이러한 원초적인 존재근거 때문이며 서로를 포용하고 채워줌으로써 보다 완전한 인간존재가 되라고 불리움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다 좋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붉은 노을 속에 지는 해,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 하늘과 산과 바다를 보고도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자연보다 훨씬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우리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할 때가 아닌가 한다. 우람한 나무 같아서 기대고 싶은 한 인격이 내게 가까이 있고 별빛처럼 다정한 그대의 있음을 노래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벅찬 일이며 그때가 바로 하느님께서 「참 좋았다(아주 좋았다)」고 최고의 감탄을 하신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참고 : 공동번역 창세 1, 10. 12. 18. 22. 25에 나오는 좬참 좋았다좭는 성서원문에는 다 그냥 「좋았다」이며 31절에 한번만 「참 좋았다」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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