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서울 대교구장으로서 30년을 포함해 47년간의 사제생활 동안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맡았던 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중견 언론인 모임인 여의도클럽(회장=김도진)이 6월30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르네상스홀에서 주최한 오찬 모임에 참석,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맡았던 때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일에 몰두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린 1964년 6월부터 1966년 4월까지 2년간 당시 「가톨릭시보」(현재 가톨릭신문)사장을 맡았었다.
김추기경은 『사장이자 기자, 영업사원의 역할까지 해가며 매일 로마에서 오는 공의회 소식들을 전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며 『신문 한 장 한 장을 예술 작품 만드는 듯 한 정성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또 주교가 되기 전 안동과 김천에서 약 2년 반 동안 본당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던 때도 그에 못지않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김몽은 신부, 김준철 신부를 비롯해 홍영표 전CBS전무, 편일평 청주MBC사장, 김현(한국여행문화원 회장)과 이부영, 박성범, 이석현, 이길재, 김영진, 김영환, 김호일, 유선호, 하순봉 의원 등 각계 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송별 미사 강론때 『서울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도망치고 싶고 짐을 벗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셨는데···.
▲70년대 유신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정부와의 갈등과 함께 교회 내에서도 반정부적인 입장에 이견을 갖는 분들이 있었지요. 직접 제게 항의를 하거나 로마에까지 사람을 보내기도 했지요. 실제로 제가 물러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71년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성탄 미사에서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발표한 이래 사회적 위기 때마다 곧은 발언을 해왔습니다.
▲87년 6·10항쟁 때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먼저 나를, 다음에는 신부와 수녀들을 먼저 쓰러뜨려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경찰 투입을 저지했습니다.
=역대 대통령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식이었지요. 다만 박정희 대통령과는 깊은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습니다. 지학순 주교가 중앙정보부에 체포됐을 때 청와대에서 1시간 반 동안 종교의 역할, 언론 자유, 왜 교회가 노동문제에 개입하는 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모 대통령 내외와는 3시간 동안 제가 채 10분도 말할 기회가 없었지요. 대통령이 권위를 앞세우면 직언을 할 수가 없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7월3일부터 열흘간 일본을 방문하고 8월에 미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남은 생애를 뜻 깊게 보낼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요. 최대한 봉사하는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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