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클레르 리델(Felix Clair Ridel·1830~1884·파리외방전교회) 주교. 한국명 이복명.
1857년 사제품을 받고 1859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그는 1861년 3월 조선 땅에 선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 일대를 사목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를 피해 중국으로 탈출했다.
1869년 4월 27일 교황 비오 9세로부터 제6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1877년 다시 조선에 입국했으나, 4개월만인 1878년 1월 28일 관헌들에게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다 그 해 6월 강제 추방됐다.
리델 주교가 1878년 1월 말부터 6월 초까지 5개월 동안 서울에서 체험한 감옥 생활을 담은 회고록이 최근「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펠릭스 클레르 리델/유소연 옮김/살림/252쪽/1만6000원)이란 이름으로 번역돼 나왔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명지대, LG연암문고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국학 관련 희귀자료의 국역사업인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시리즈의 여섯 번째 권이다.
책은 파리외방전교회 사료 담당 아드리앵 로네(1853~1927) 신부가 정리해 1901년 발간한 같은 이름의 회고록(MA CAPTIVITE DANS LES PRISONS DE SEOUL)을 저본으로 했다. 여기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프랑스「가톨릭 전교지」와 「전교회 연보」의 타자본, 한국교회사연구소의「리델문서Ⅱ」 타자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고문서 사료실의 원본 복사본 등을 비교 대조했다.
책은 130여 년 전 조선 감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감옥에서 만난 옥졸들과 죄수들의 모습은 물론 신입 죄수의 입방 신고식, 형벌 방식, 옥내 벼룩의 크기까지 기록돼 있다.
리델 주교는 당시의 감옥을 “지상에 존재하는 지옥의 상(像)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포도청) 죄수들은 주로 세 부류로 나뉜다. 도둑, 채무 죄수, 그리고 우리 같은 (천주교) 신자들, 이렇게 세 부류인데, 옥 안에는 신자들이 대다수였다. 이 세 부류의 죄수들은 각각 다른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옥졸들의 부정부패와 만행은 극에 달했다. 죄수들에게 밤새 노래를 부르게 해 잠을 못 자게 하는가 하면, 마음에 둔 여인을 가로채기 위해 죄 없는 사내를 잡아들여 반불구로 만들기도 했다. 옥졸들의 구타로 사망하는 죄수도 적지 않았다.
열악한 처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옷이 없는 데다 씻을 물이 부족해 수감자들이 피부병에 걸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더위와 추위, 환기가 안 되는 좁은 공간, 초라한 식사로 인해 건강을 잃는 수감자가 많았다.
리델 주교는 이 외에도 조선 감옥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을 남겼다. ‘차꼬’라고 불리는 발족쇄, 용 장식품이나 방울 등이 달린 오랏줄, 감방·법정·형구틀의 모습과 감옥 구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은 사료적 가치가 크다.
또 죄수들을 염탐하기 위한 포도청 소속 비밀경찰이나 풀려나는 수감자가 남은 자들의 석방을 기원하며 베푸는 잔치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조선 감옥의 이야기가 수록됐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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