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과 싸우며 빚어낸 고운 언어
‘활활 타오르는/촛불 바라보면//사랑을 위한 침묵의/아름다운 음악 들려오네//제 한 몸 태워/스스로 작아지는//헌신적/봉헌의 삶//세상을 비추는/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빛이신 예수님/사람을 통해//당신 모습 보여 주시는/빛의 삶’ (본문 ‘빛의 삶을 향하여’ 중에서)
깊은 수렁에 빠져서야 비로소 삶의 전기를 만나며 하느님의 숭고한 뜻을 다시금 깨달을 때가 있다.
지난 1994년 바이러스가 온몸 운동신경과 말초신경을 없애는 ‘길리암-바레씨 증후군’이란 희귀병에 걸렸던 최남순 수녀(크리스티나·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소생 가능성 1%란 의사의 진단을 ‘기도’의 힘으로 이겨냈다.
이어진 15년 동안의 투병 생활 동안 그는 ‘기도 사도직’에 매달리며 틈틈이 시를 써왔다. ‘나를 거울에 비춰보듯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빛의 삶을 향해 발돋움하며 재확인하고 싶다’는 취지에서였다.
최남순 수녀가 2005년 「내 혼의 동반자」 이후 3년 만에 새 시집「빛의 삶을 향하여」(도서출판 사람과사람/133쪽/7000원)를 냈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수도회 홈페이지 ‘영의 노래’ 게시판에 매주 시 한 편씩을 8년 동안 올려왔다. 이번 시집은 게시판에서 추린 신작시 82편과 ‘예수님과의 눈맞춤’, ‘기도의 삶’ 등 산문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신작 시편들은 오랜 투병을 거친 노(老)수녀의 노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순순하고 평온하다. 고요와 침묵 속에 오랫동안 삭혀 마음의 여과를 거친 탓이다. 아무런 가식이나 꾸밈없이 고백하는 시편에는 하느님에 대한 찬미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 자연에 대한 관조의 눈길, 생명에 감사하는 마음이 고운 언어로 새겨져 있을 뿐이다.
소나무 한 그루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끼고 침묵의 기도를 발견하며(소나무), 수녀원 정원의 작은 꽃 한 송이에서도 부활의 전주곡을 실감한다(복수초).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말씀을 반추하며 영의 샘물 퍼 주는 삶을 살다가 서산에 지는 노을처럼 흔적 없이 하늘나라로 가고 싶단다(소망).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조창환(토마스 아퀴나스·63) 시인은 시집 머리에 “수녀님의 시에는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찬미와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고 싶다는 촛불과 같은 소망이 담겨 있다”며 “일생을 초월자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본 분이 말씀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하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이라고 전했다.
최남순 수녀는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중퇴, 1960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입회했다. 본당 선교활동을 거쳐 1979년부터 서울과 경기, 인천 등지에서 교정사목 전담으로 재소자를 위한 삶을 살아왔다.
1994년 발병한 뒤 지금까지 3급2호 장애인으로 장기투병 중이며, 인권의 날 대통령표창(1982년)과 교정대상 자애상(1985년)을 수상한 바 있다. 198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하느님의 시간표」,「행복한 순례자」,「내 혼의 동반자」등의 시집이 있다.
※구입 문의 02-335-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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