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羊)으로 표현한 부끄러운 인간 자화상”
양(羊)은 성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동물이다. 일찍부터 이스라엘 경제의 중심(창세 4, 2)을 이뤘으며, 구약시대 하느님 앞에 바친 많은 제물 중에 대표될 만한 것이 1년 된 양이었다.
또한 양은 희생 제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어린양’에 비유(요한 1, 29)했으며,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이라고 찬양(1베드 1, 19)했다.
이렇듯 순함과 착함, 약함의 상징인 ‘양’이 욕망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면 어떨까?
화가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김의규(가브리엘. 53) 전 성공회대 교수가 탐욕스런 인간들의 삶을 양에 빗대 풍자했다. 자신의 신간 ‘양들의 낙원, 늑대 벌판 한가운데 있다’(나무와숲/208쪽/1만1000원)를 통해서다.
길라잡이양, 사색양, 구린양, 허무양, 으뜸양, 앵벌이양, 허울양, 날뜀양, 은둔양, 독고양 등 각기 다른 양들의 이야기는 이솝우화처럼 짧고 단순하지만,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만만치가 않다.
욕심 부리고, 잘난 체하고, 화내고, 속이고, 잔꾀부리고, 아부하고, 서로를 헐뜯는 양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두 편으로 나뉜 양들이 동서로 갈라서니 한 무리는 서양(西洋), 또 한 무리는 동양(東洋)이라 이름 하였다’, ‘내, 이 나이 되도록 살며 허무를 말하는 놈치고 선행하는 놈을 본 적이 없어. 허무하니 할 리가 있나. 안 그래?’, ‘흰빛의 양은 깨끗하지만 맹수의 눈에 잘 띄는데다 약해보이고 목욕을 자주 하는’ 등 저자가 전하는 촌철살인의 말부림 또한 무릎을 ‘탁’치게 하는 재치와 해학이 가득하다.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심각하지도 않은 글을 한 장씩 넘기다보면 ‘과연 사람살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울러 놀라우리만큼 제각각 양들의 표정과 특징을 세세하게 묘사한 수채화 풍의 그림들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 있어 ‘김의규’란 이름 석자는 연재소설 ‘아, 최양업’의 삽화가로서 유명세를 타 이미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는 ‘양’에 이어 ‘토끼’나 ‘호랑이’를 소재로 한 또 다른 엽편소설(미니픽션)을 준비 중이다.
문학평론가 정현기(우리말로 학문하기 회장)는 ‘추천의 글’에서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 편 한 편 시를 읽는 듯한, 삶에 대한 여러 빛깔의 경구로 슬기로운 눈 너비를 뜨게 한다”며 “문학적 통념을 박살내는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는 높이 살만 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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