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담은 시를 노래하다
시를 쓰는 것은 ‘사람 구경’ 하는 것
평범한 일상 소재로 삶의 내면 포착
독거 노인, 노점 아주머니 등에 시선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구나. / 그 어떤 희망에도 말 걸지 않은 세월이 부지기수다. / 마당에 나뒹구는 소주병, 그 위를 뒤덮으며 폭우 지나갔다. / 풀의 화염이 더 오래 지나간다. / 우거진 풀을 베자 뱀허물이 여럿 나왔으나 / 사내는 아직 웅크린 한 채의 폐가다’(‘배꼽’ 중)
한국시단의 대표적인 중견 문인수(요아킴·63) 시인이 자신의 일곱 번 째 시집 ‘배꼽’을 내놓았다. 지난해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시집 ‘쉬!’(문학동네) 이후 2년 만이다. 새 시집에는 표제작 ‘배꼽’과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식당의자’ 등 모두 59편의 시가 실렸다.
평범한 일상 소재를 모티프로 삼아 삶의 내면을 포착해내는 시인의 필력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마흔두 살에 늦깎이 시인이 됐지만 ‘환갑에 맞은 전성기’, ‘갱년기를 모르는 시인’이란 우리 문단의 평이 무색치 않은 이유다.
문씨는 책 말미 ‘시인의 말’에서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며,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 발문처럼 새 시집에는 사람 구경이 주를 이루며,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심히 굽은 등으로 동사무소 오르막길을 걷는 독거노인(‘꼭지’)에서부터, 넓은 벽에 시멘트 반죽을 바르는 사내(‘벽화’), 길가에 쭈그려 앉아 있는 인도 노파(‘줄서기-인도소풍’), 추운 날 길가에 주저앉아 대파를 다듬는 노점 아주머니(‘파냄새’), 귀농할 채비 중인 동네 목욕탕의 단골 이발사(‘아마존’), 축 늘어진 빈 젖을 문 아프리카 아이(‘아프리카’)까지 그의 시선은 늘 사람에 머물러 있다.
사실 그에게 있어 사람이 빠진 시는 시가 아니다. 두 눈이 아닌 온 몸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체취를 그려내는 것은 시인의 주특기다. 그것이 시인을 심상신인상(1985), 김달진문학상(2000), 노작문학상(2003), 시와시학상(2006), 편운문학상(2007), 한국가톨릭문학상(2007), 미당문학상(2007)과 인연을 맺게 했다.
황동규 시인은 추천사에서 “문인수의 시는 꿈틀댄다. 문인수에게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꿈틀거리며 질펀하게 번지는 절창 시편들을 직접 만나면 될 것이다”라고, 문학평론가 김양헌은 해설에서 “문인수 시인은 우리 시대가 내다버린 인(仁)을 시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욕망의 가속도에 휩쓸린 존재들에게 거듭 삶의 의미를 묻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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