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작은 기쁨’이고 싶다
메마른 영혼 울리는 맑은 언어 한결 같아
일상 속 숨은 행복 일깨울 시 103편 수록
올해로 서원 40년을 맞는 이해인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 63)가 자신의 여덟 번째 시집 ‘작은 기쁨’을 펴냈다. 6년 만의 반가운 새 시집 소식이다. 시인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출간돼 20쇄를 넘긴 ‘작은 위로’와는 ‘자매 시집’이다.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 나이는 어느덧 이순을 훌쩍 넘겼지만 수녀의 언어는 여전히 맑고 곱다. 수녀의 품에 안기면 쓰라린 상처는 아물고, 미움과 분노는 눈을 감으며, 메마른 영혼은 마음을 연다.
그래서일까. 1976년 종신서원과 더불어 세상에 나온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는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후 나온 시집들과 7권의 에세이집, 8권의 번역서 모두 종교를 초월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이번 시집에도 주변의 작은 기쁨들을 일깨워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103편의 따뜻한 시가 실렸다. 시로써 ‘누군가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고 싶다’는, 그리하여 ‘한 톨의 시가 세상을 다 구원하진 못해도, 작은 기도는 될 수 있다’고 믿는 수녀가 기도하듯 써내려간 노래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작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생채기도 보이고, 보기 드문 아픔도 느껴진다.
‘엄마가 떠나신 뒤 / 나의 치통도 더 심해졌다 / 무엇을 먹어도 / 맛을 모르겠고 / 아프기만 하다 // 엄마가 떠나신 뒤 / 골다공증도 더 심해졌다 / 구멍 난 뼈엔 바람만 가득하고 / 조금 남은 기쁨의 양분도 / 다 빠져나갔다 // 그러나 더 두려운 아픔은 /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이는 것 / 예쁘던 삶이 갑자기 시들해지는 것 /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고 / 하루하루가 서먹한 것’(‘사별일기’ 부분)
알고 보니 수녀는 지난해 9월 어머니를 여의었다. 몇몇 지인에게만 부고를 알린 채 조용히 모친상을 치렀단다. 이제야 ‘엄마를 보내고서 갑자기 시가 쏟아졌다. 기도처럼 쏟아져 나왔다’는 수녀의 고백이 우릿하게 다가온다. 하긴 그이도 수도자이고 시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고 한 사람의 ‘딸자식’인 것을.
수녀는 시집 머리에 “기쁨을 사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떠난 나의 어머니와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사는 우리 수녀님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썼다.
한비야(비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씨는 추천의 글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읽기만 해도 착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적었고, 장영희(마리아 서강대 영문과) 교수는 “입가에 스치는 작은 미소, 함께 걷자고 내미는 손,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 등 수녀님이 주시는 ‘작은 위로’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시집에는 박경규 한국예술가곡연합회장이 곡을 붙인 ‘작은 기쁨’의 멜로디 악보가 함께 실렸으며, 이 곡은 오는 4월 15일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음악저널’ 창간 기념 음악회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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