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애 쉬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서지 않으려 했는데….”
나이 80을 훌쩍 넘긴 노(老) 사제가 울었다. 양병묵(82, 루카) 신부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3월 4일 수원 정자동주교좌 성당. 쩌렁쩌렁하던 목소리, 풍채 늠름했던 모습은 파킨슨병이 이미 앗아가 버렸다. 단상 위에는 휠체어에 의지한 힘없는 할아버지 사제만 있을 뿐이었다.
“세계대전, 8.15해방,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기동안 늘 변함없이 사제로 살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의 전지전능한 축복과 사랑에 벅차오르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신부의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었다.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가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으로 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구 분할 등 교회내적으로도 수많은 변혁의 소용돌이를 거쳐야 했다. 그 때마다 양신부와 함께한 것은 하느님이었다.
“나를 지금까지 지켜 주신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셨습니다. 제가 지금 받고 있는 것은 분에 넘치는 사랑이며 은혜로움입니다.”
양신부는 또 눈물로 ‘용서’를 이야기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동안 참으로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받아 왔지만 저 자신의 부족한 점 때문에 많은 분들께 아픔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생에서의 삶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겠습니다.”
신자들이 울기 시작했다. 사제들의 눈 주위도 붉어졌다. “기도와, 덕. 배려가 부족해 본의 아니게 상처 드린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 지금 투병 생활을 통해 겪는 고통을 모두 저 자신의 속죄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감사와 용서만을 이야기하던 양신부가 신자들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남은 생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동안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 양병묵 신부 약력
▲1931년 용인시 모현면 출생 ▲1958년 3월19일 사제서품, 안성성당 보좌 ▲1959년 미양성요한비안네 주임 ▲1962년 남양 주임 ▲1970년 안양중앙 주임 ▲1975년 사강 주임 ▲1978년 평택 주임 ▲1985년 광명 주임 ▲1988년 교구 사무처장 겸 관리국장 ▲1990년 조원동주교좌 주임 ▲2001년 1월30일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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