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상,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글”
고희(古稀)를 넘어 올해 희수(喜字)를 맞은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77)씨.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름 앞에 ‘원로작가’란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저 ‘현역’일 뿐이다. 박씨는 지난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했다. 30여 년 가까이 9권의 단편집과 15권의 장편을 쉼 없이 쏟아냈으니 참 바지런히도 글을 써왔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50대 중반에 세례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한 그는 가톨릭 문학계에서도 거장이다.
박완서씨가 신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302쪽/9500원)를 냈다.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이후 9년 만이다. 2001~2006년까지 ‘현대문학’,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등 주요 문예지와 일간지에 발표해온 9편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그리움을 위하여’는 2001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한 ‘친절한 복희씨’는 지난해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혔다.
박완서 문학이 그려내는 세계는 그 소재와 주제 면에서 넓고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의 펜을 거치면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도 갑자기 감칠맛 나고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그 무언가로 변한다. 읽는 이가 미처 눈치 챌 틈을 주지 않고 한달음에 이야기를 풀어가다, 아차 싶은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 ‘박완서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이번 소설집도 소시민적 삶의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거나(‘거저나 마찬가지’, ‘촛불 밝힌 식탁’), 특유의 반전을 이끌어내고(‘대범한 밥상’), 적재적소의 유머와 재치를 그려내는(‘그래도 해피 엔드’) 등 박완서만이 쓸 수 있는 문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만 전보다 박완서 특유의 ‘신랄함’이 좀 누그러지고, 대신 ‘관대함’의 품이 더 넓어졌다. 어쩌면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박씨 자신과 소설 속 주인공들 사이의 동질감이 형성됐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의 노년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애무할 거라곤 추억’밖에 없으며, ‘암’, ‘중풍’, ‘노인성 치매’, ‘관절염’, ‘건망증’ 등을 앓는 노인들이다. 박씨는 “당신네 젊은이들은 노인이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하겠지만, 다 재미있게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소설집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9년 만에 또 창작집을 내면서 작가의 말을 쓰려니 할 말이 궁했던지 문득 이게 마지막 창작집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이 짓거리라도 안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이 대부분이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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