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포옹’ 되살렸으면…
생에 대한 반성 통해
긍정과 축복의 삶 노래
‘사랑과 눈물’의 시인 정호승(프란치스코 57)씨가 자신의 아홉 번째 시집 ‘포옹’(창비/132쪽/6000원))을 냈다. 2004년 발표한 ‘이 짧은 시간 동안’ 이후 3년 만이다. 40여 편의 미 발표작을 포함해 66편의 시를 담았다.
시인은 책 말미 ‘시인의 말’에서 “화해와 포옹이 없는 시대에 이 시집이 우리를 포옹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서로 껴앉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된 신석기시대 부부 유골을 소재로 한 ‘포옹’을 표제작으로 삼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어느덧 시력(詩歷) 35년차에 들어선 중견 시인답게 단순한 감성을 뛰어넘어 삶과 인생을 관조하게 하는 시인의 힘은 여전하다.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늙음, 자살, 장례 등 어두운 소재들을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암울하지 않다. 응시와 침묵에 이어진 생에 대한 혹독한 반성은 삶을 긍정과 축복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주제는 ‘아버지’다. 시인은 일전에 어머니는 노래했으나, 아버지를 노래하지는 않았다. 온화하고 잔잔한 성품의 아버지를 시에 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시인의 아버지 정창현(88) 옹은 노환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의 부탁에 아버지는 일본어 책 ‘마더 테레사의 삶 그리고 신념’(본지 9월 23일자 19면)을 최근 번역하고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시인은 쓰러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부모가 사는 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늘 아버지를 지켜보고, 목욕탕과 화장실에 모시고 가면서 아버지는 드디어 아들의 시가 됐다. 그는 “아버지가 허물어지자 비로소 시 속으로 걸어들어왔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아버지는 배변도 어려울 정도로 늙었고(노부부), 나팔꽃 씨를 환약으로 알고 먹은 뒤 나팔꽃으로 피어나거나(나팔꽃), 일생을 벽에 박혀 무게를 견디다가 빠져나오면서 구부러진 못(못)”이라며 노래했다.
원로시인 신경림씨는 추천사에서 “정호승 시에는 맑고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데서 오는 깊은 고뇌와 짙은 아픔이 있다”며 “그는 이번 시집에서 우리 서정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1950년 대구 출생인 정 시인은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 이래 ‘슬픔이 기쁨에게’,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 많은 시집을 통해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제3회 소월문학상, 제10회 동서문학상, 제12회 정지용문학상, 제11회 편운문학상, 제9회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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