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는 농민의 새 삶, 희망이죠”
벨기에 태생, 1958년 가난한 이 도우려 한국행
50년 인고의 세월 극복하고 ‘임실치즈’ 개발
전주교구 복지시설 ‘무지개가족’과 동고동락
“천지에는 풀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난에 찌든 농민들은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치즈가 뭐냐는 농민들의 물음에 우유로 만든 두부라고 설명했다. 치즈를 만들기 위해 약탕기로 산양유를 졸이고, 비눗갑에 담아 숙성도 시켜봤다. 그러나 3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다. 무작정 자비를 털어 치즈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건너갔다. 3개월 동안 치즈공장들을 둘러보며 노하우를 익혔고, 마침내 치즈 만드는 방법을 획득했다. 임실로 돌아와 농민들과 함께 치즈 공장을 설립했고, 1980년 농민들에게 모든 것을 남겨주고 떠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임실치즈의 발전을 함께 했다. 그리고 2007년 오늘. 임실치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치즈 브랜드가 됐다.”
‘치즈로 만든 무지개-지정환 신부의 아름다운 도전’(고동희, 박선영/명인문화사/268쪽/1만2000원)에 실린 이야기다.
본명 디디에 시르스테벤스. 한국명 지정환. 반백의 머리와 수염, 푸른 눈이 유달리 한복과 잘 어울리는 벽안의 신부. 한국인이라 해도 어색함이 없는 이 벨기에인 신부는 1958년 사제가 된 후, 동양의 가난한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치즈 신부’로 활동하며 훌쩍 흘러간 50년의 세월. 그는 이제 ‘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정작 자신은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휠체어를 타면서도 전주교구 사회복지시설인 ‘무지개 가족’ 공동체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국의 농민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 온 전주교구 지정환 신부의 삶을 소개한 책 ‘치즈로 만든 무지개’가 최근 출간됐다. 책에는 1967년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임실에서 신용협동조합 운동에 뛰어든 이래 지금까지 40년 간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 부임지인 전북 부안본당에서 토지가 없는 농민들을 위해 벌였던 간척사업, 두 번째로 부임한 전북 임실본당에서 가난한 농민을 위해 산양을 기르고 치즈공장을 세웠던 일, 지학순 주교의 구속 및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과정, 1980년대 이후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휠체어에 의존하면서도 ‘무지개 가족’, ‘무지개 장학재단’을 통해 중증 장애인의 재활을 도와 2002년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은 일 등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2003년 무지개가족 지도신부직에서 물러나 현재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에서 ‘별아래’라는 집을 지어 무지개가족에서 함께 살고 있는 지정환 신부.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해야 심심하지 않다’는 그는 교구 전산화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뮈텔 주교 등 1800년대부터 1930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자료를 CD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신부는 책에서 “돌이켜 보건데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치즈의 성공’이 아니라 ‘임실 주민들의 새로운 삶’이었다”며 “한국인들과 함께 해온 지나온 삶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다만 함께 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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