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장애인 페터 헤프의 ‘희망이야기’
독일 최초의 종신 부제 … 시각 청각 잃고 손끝으로 대화
‘어셔 증후군’(Usher Syndrome)이라는 선천성 유전질환이 있다. 출생 직후부터 발병해 망막 변성 질병인 망막색소변성증에 의한 점진적인 시력 손상과 함께 청각 장애를 수반한다.
독일 가톨릭교회 최초의 종신부제 페터 헤프(Peter Hepp)는 이 치명적인 유전병으로 인해 이미 어려서 청각을 잃었다. 청각 장애자 기숙사에서 수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수도원에 입회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지만 또 다시 그를 덮치는 시각 장애로 절망한다.
하지만 절망은 잠시였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오직 손가락 끝 뿐이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과 화해하고 평화를 발견한다. 청년기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불행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침묵과 어둠 속에 갇힌 뒤에 빛을 발견했고, 평화와 사랑을 회복했다. 진실한 사랑을 찾아 결혼도 했다.
〈손끝으로 느끼는 희망〉(사람과책)은 바로 그 중복 장애인 페터 헤프 종신부제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상실과 절망, 어둠을 희망과 빛으로 일궈내는 연금술이 있다.
절대 고독의 처지에서 찾아낸 화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평화와 사랑, 보이고 들리는 것을 잃은 대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그는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특히 장애인들에게 전한다.
책은 그러나 결코 역동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지나치게 담담하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박정미씨는 페터 헤프의 말씨가 ‘어눌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어눌함은 이 책이 다른 장애인들의 ‘인간 승리의 드라마’와 다른 점이다.
‘승리한’ 장애인은 세간으로부터 찬탄과 경외의 대상이 되지만, 과연 장애인들은 누구를 위해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가. 페터 헤프의 이야기는 승리에 주목하려는 우리들의 내면을 질타하면서 진실하고 절박한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페터 헤프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독일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그는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서 자신의 체험을 나눔으로써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었다. 지난해 10월 독일 ZDF 방송 토크쇼에 출연한 페터 헤프. 그의 왼손 위에서 부인인 마르게리타 헤프의 손가락이 춤추듯 움직였다. 그녀는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남편의 손에 농맹인을 위한 문자인 ‘로름식 촉각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참이었다.
이 책에는 장님을 위한 점자도, 농아를 위한 수화도 아닌, 농맹인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의사 전달 체계인 ‘로름식 촉각 언어’도 소개돼 있다.
페터 헤프 종신부제는 신학 공부와 3년간의 부제 교육을 마친 뒤 지난 2003년에 독일 교회 최초의 종신부제로 서품, 현재 로트바일에서 농맹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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