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빛 투과시키는 얼룩없는 유리창같은 글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을 하느님의 빛을 투과시키는 창으로 비유하곤 하셨다.
과연 한 점 얼룩이 없는 유리창 앞에 서면 우리는 유리의 존재를 보지 못하고 비추어지는 바깥 풍경에만 심취하게 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그 많은 성경 말씀 중에 하필 바오로 사도의 이 신앙 고백을 붙잡고 사제 생활을 시작한 이기양 요셉 신부님의 강론집을 읽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씀하신 이 투명한 ‘유리창’이었다.
어찌 보면 요셉 신부님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임을 매일 강론을 통해 증거해 오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론이라는 틀로 보여지는 신부님의 유리창에는 얼룩이 없다.
개인의 감상이나 신변잡기는 보이지 않고 한결같이 말씀만을 따라갈 뿐이다.
하느님과 온전히 뜻을 같이 하면 그 순간 영혼이 밝아지고 하느님 안에서 변화하게 된다는 믿음만이 가득찬 이 논리정연한 유리창이 보여주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이며, 말씀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이다.
교회 전례력으로 〈대림.성탄 시기〉 강론집을 시작으로 〈연중시기〉 2권과 〈사순.부활시기〉 1권이 쏟아져 나와 우리는 무척 풍요로운 말씀의 식탁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매 강론 끝에는 주제에 맞는 성화를 가져와 더욱 쉽고 긴 호흡으로 묵상을 이어가게 배려하고 있다.
이렇게 알차고 푸짐한 말씀의 식탁이 한순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한눈에 짐작할 수 있지만 식탁에 앉아 하나하나 나누는 순간 새삼스럽게 그 정성과 열정에 다시 한번 숙연한 감동을 하게 된다.
한 점 얼룩이 없는 유리창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 새벽 누구보다 일찍 깨어 하루를 준비해온 요셉 신부님께서 강론집을 구상하고 준비에 들어간 것은 햇수로 4년이 넘었고 그 짧지 않은 시간 단 하루도 휴식은 없었다. 축일 및 전례시기에 맞는 강론과 동시에 연중 강론을 빠짐 없이 준비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강론을 집필해야 했던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더군다나 그 4년 동안 ‘성경 쓰기’, ‘100권 신심서적 읽기’, ‘기도학교’ 등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적인 사목으로 신부님께서 하셔야 했던 일들은 교회 안팎으로 다양하고 번거로웠을 것이다.
4천 명이 넘는 신자들의 희로애락 가운데 서서, 보좌해 주는 후배 신부도 없이 본당 안의 모든 단체를 이끌어 가며 신부님께서 넘으신 이 봉우리는 당분간 그 누구에게도 쉽게 침범 당하지 않을 가파르고도 당당한 봉우리이다.
살아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빛을 투과시켜 보여주는 신부님의 맑은 유리창이 하느님을 모른 채 세속에 사는 비신자들에게까지 그 에너지를 따뜻하게 비추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요셉 신부님께서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쉬실 수 있게 되기를 가만히 희망해본다.
신달자(엘리사벳.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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