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 바치는 마음으로 인형 빚어”
선조들 삶의 모습·애환 담아
한국 순교사도 그대로 재현
“오롯이 주님의 이끄심 때문에 걸어올 수 있었던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 속에 세워두신 이정표가 인형으로 빚어진 셈입니다.”
지난 2001년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아 최초의 조선교회 공동체 모임인 ‘명례방’을 비롯한 ‘김대건 성인의 탄생’ 등 12가지 소재를 순교인형으로 재현해내 새로운 체험과 감동을 안겨주었던 전통인형공예가 임수현(즈느비에브.53.서울 가회동본당)씨가 자신의 외길인생을 담은 책 〈나의 살던 고향 옛 인형 일기〉(한길아트)를 펴냈다.
지난 1982년 세례와 함께 인형공예에 입문한 후 20년 넘게 만들어온 작품 300여점을 모아 엮은 〈…옛 인형 일기〉는 인형을 빚을 때마다 첫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는 심정으로 임해온 작가의 신앙고백이자 고행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인형에 뛰어든 후 수도자같은 생활을 하며 인형 제작에 몰두해온 임씨는 손수 흙으로 인형의 살을 빚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고증을 거쳐 항라, 광목, 명주, 삼베, 양단 등 그 시대의 옷감을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인형의 머리를 삼아주는 등 눈물겨운 노력으로 인형에 숨을 불어넣어 왔다. 그렇게 탄생한 인형을 떠나보낼 때마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고 꼼꼼히 기록해온 인고의 흔적이 바로 〈…옛 인형 일기〉다.
“복식을 공부하려는 후손들이 제 자료를 보며 자연스럽게 순교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바람에 80점의 인형으로 구성된 ‘한국천주교회사’ 열두 마당도 고스란히 〈…옛 인형 일기〉에 담았다.
이 땅에서 살다간 이들의 얼굴을 그대로 살려내고 그 시절에 쓰던 비단, 삼베, 무명옷과 꽃신, 고무신, 미투리까지 재현해낸 그의 인형에서는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숨결이 전해져온다.
처녀작인 ‘낙도 처녀’는 이른 아침 육신의 양식인 조개를 따러 바닷머리에 나갔다가 햇덩이(예수)에 마음이 빼앗긴 섬 처녀를 통해 작가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성체 모양을 빚기 위해 1년6개월을 기도 속에 고민했던 ‘주문모 신부의 부활대축일 미사’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고백이 묻어난다. 떡과 글씨 중 어느 것이 더 고른지 비교하며 아들을 독려했던 한석봉 어머니의 일화를 다룬 ‘한석봉과 어머니’에서는 살아있는 모자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 외에도 왕비, 비바리, 정경부인 등 어머니와 누이, 아낙으로 살았던 우리 여인들의 다양한 삶이 ‘시집가는 날’ ‘엄마야 누나야’ 등의 작품으로 재현돼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조상들과 후손들이 화해하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 하느님의 섭리를 공유함으로써 친교의 열매를 맺는데 제 인형이 조그만 소임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출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