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은 기쁜 소식 전하는 ‘위대한 선교사’
가톨릭·분도 출판사 등 20여곳서 활동
공동협력 강화로 불황 속 꾸준한 성장
전문 기획력·국내 필진 확보 등 과제도
『만일 교회가 출판 기관의 존속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교황의 제의와 지팡이와 가구까지라도 팔아서 바치겠다』
교황 비오 10세는 교회 출판 활동이 사목과 선교 활동에 있어서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이 이렇게 강조했다. 이는 곧 성당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진리를 수호하고 전하는 출판 활동에 소홀하다면, 그것은 참된 교회의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출판의 역사는‘복음화의 역사’
교회 출판의 역사는 곧 교회의 역사 그 자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가르침을 직접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셨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 역시 처음에는 일대일로, 혹은 소규모 집단을 향해 설교로써 복음을 선포했다.
얼굴을 마주대고, 혹은 선포자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소식을 전하고 받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구원의 소식을 만방으로 전하고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야 했을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 체험이 희미해져갈 때, 교회는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바로 그것이 성서이고, 교부들의 가르침이었다.
신앙 증거자들과 스승들의 가르침은 글로 쓰여져 책으로 묶어졌고, 수도회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바로 이렇게 책으로 묶어진 하느님 말씀과 신앙의 가르침들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인쇄술의 발명 이후, 교회는 더 많은 가르침들을 더 쉽고, 더욱 광범위하게 전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됐다. 그랬다. 책은 선교사들보다도 더 멀리,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정글과 사막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돼 전해졌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 복음화의 역사는 「책」이라고 하는,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함께 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 교회의 역사도 책과 함께 시작됐다. 초대 교회의 신앙선조들이 천주교 신앙을 처음 접한 것은 바로 중국어로 된 교리서 책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궁구하게 된 선조들은 더 많은 책을 연구했고, 결국은 책을 통해 보고 들은 바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훗날 한국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뒤, 교회는 아직 우리 사회가 문맹의 처지에 있을 때, 왕성한 출판 사업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웠고, 비단 그리스도교 신앙을 직접 전하는 일뿐만 아니라, 서구의 사상과 문물을 전하는 개화의 도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는 이후 교회 안의 사목활동과 세상을 향한 선교의 소명을 책과 출판물이라는 중요한 수단을 통해서 완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 왔으며, 이제 한국교회의 출판 활동은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사목활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복음화의 주역들
이처럼 소중하고 막중한 소명을 실천하는 그 주인공들은 바로 「출판인」들이다. 이들은 하느님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양질의 도서들에 담아 신자들을 계몽하고 그들의 신앙 성숙에 도움을 주며, 사목자들의 활동을 돕고,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자신들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출판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출판사들은 대략 15~20여개사 정도. 그 중에서 교구나 수도회가 운영하면서, 매년 수십종의 단행본을 꾸준하게 펴내는, 이른바 교계 출판사로 불리우는 주요 출판사는 6개사 정도이다.
그 외에 각종 교회 공식 문헌을 펴내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사 전문서적들을 펴내는 한국교회사연구소를 비롯한 연구소들, 가톨릭대학교를 비롯한 각 가톨릭대학 출판부, 기쁜소식과 성 요셉, 크리스챤 등 평신도가 운영하는 출판사들 역시 교회 출판에 일조하고 있다.
교회의 출판인들
한국 천주교 출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역시 가톨릭출판사이다. 종종 유구한 역사가 진부할 수도 있으나 가톨릭출판사는 끊임없는 변신으로 젊어지고 있다. 기획부터 인쇄까지 전 제작 과정을 총괄하는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교회 출판사이다.
신자 생활 및 교회 생활을 아우르는 다양한 출판물로 영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출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통을 통해 다져진 내실을 바탕으로 각종 문화사업에도 적극 임한다. 특히 지난 2000년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동원된 「가톨릭 문화총서 기획위원회」를 발족, 권위있는 책들을 발간하고 있다.
「무게」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도출판사는 한국출판계에서 이미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신학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일관되게 신학 전문서를 펴내는 분도는 신학과 철학의 전 분야를 망라해 전문적인 신학서들을 펴내고 있고, 저자에 있어서도 가톨릭뿐만 아니라 타종교 저자들에게도 폭넓게 열려 있다. 분도의 저력은 특히 기획물에서 두드러진다.
성 바오로와 바오로딸은 각각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만큼 공통점이 많이 발견되는데, 출판에서부터 각종 영상물과 뉴미디어까지 종합적인 홍보 매체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두 출판사가 펴낸 책들 중에는 신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들, 즉 기도와 묵상서, 영성서, 우화와 수기, 동화 등이 많이 포함돼 있다. 때로는 다소 무게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러한 대중성 자체가 성 바오로 수도회의 기본적인 특성이며 실제로 신자들의 교회 서적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출판 문화 진흥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신학적 교양을 담고 있는 기획물들에도 적극 관심을 가짐으로써 지나치게 가벼운 책들을 출판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일축하고 있다.
성서 잡지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생활성서」와 「성서와 함께」는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성서를 친근하게 접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중요한 출판사들이다. 「생활성서」는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적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잡지 편집이나 책 출간이 이뤄지고 있으며, 「성서와 함께」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전문성과 깊이를 보여준다.
도약을 위한 조짐들
이전과 비교할 때, 교회 출판과 출판사들의 성장과 성숙은 괄목할만하다. 하지만 교회 출판계의 양적, 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우선 만성적인 경영상의 어려움이다. 따라서, 규모 자체가 협소한 교회 출판 시장 안에서,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신자들의 독서 인구 저변을 확대하는 것은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불황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출판 현황 속에서 기획출판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그 가운데 양질의 기획출판을 추진할 수 있는 전문 기획력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번역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국내 연구자와 필진의 확대 역시 필수적인 과제이다. 아울러, 급변하는 출판 환경 속에서, 출판사들의 공동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는 교회 출판 문화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모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서 한국 교회 안에는 교회 출판의 획기적인 도약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각 출판사들의 고민과 모색이 서서히 성과와 결실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0여년 동안 이어진 출판 불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교회 출판사들은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고, 어려운 시기를 분투해온 노력들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최근 들어 한국교회 안에는 책읽기의 열풍이 교회 전반을 넘나들고 있다. 가톨릭신문사와 서울대교구 잠실7동본당에서 시작한 가톨릭 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에 대한 관심은, 이미 각 출판사들이 뿌려놓은 거름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랫 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양서들을 출판해온 출판사들의 노력은 이제 신자들이 마음만 있으면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양적, 질적 토양을 마련해 두었다.
「운동」으로 불붙은 책에 대한 관심은 이제 개인과 단체, 각 본당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책읽기 열풍은 천주교 신자들이 원래 책읽기와 소원한 관계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 한 가지 희망적인 조짐은, 각 출판사들이 개별적인 노력에 더해, 상호 연대와 협력의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보주일을 맞아 5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 동안 명동성당 인근에서 펼쳐지는 공동 축제는 출판사들의 더욱 강력한 공동 보조를 예고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응답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로부터는 그동안 미흡했던 교회 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각 교구별로 사목 정책의 수립 안에 교회의 문화, 특히 출판 문화에 대한 사목적인 관심과 배려가 고려돼야 한다. 그리고 아래로부터는, 이미 촉발된 신자들의 독서열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참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교회 출판 문화의 도약을 위한 내외의 여건은 충분히 성숙된 것으로 보인다. 교회 출판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역시 충분한 교감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투자와 연구, 그리고 참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출판인들이, 「책 만드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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