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여성적인 시구 통해
소외된 서민의 삶 껴안아
「썩은 이 뽑듯 시인 면허증을 반납하고 시와는 담 쌓고 남남으로 사는데 우연히, 아주 우연히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팔삭둥이가 이것이다」
김춘추(루가.60.가톨릭의과학연구원장) 시인은 자신의 여섯 번째 시집 「聖오마니!」(솔/80쪽/7000원)의 첫머리를 이렇게 연다. 국내 최고의 백혈병 전문의이면서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의사시인만의 표현이다.
「파라오 시절 홍수에도 끄떡 않고 / 6.25적 그 징한 포성에도 끄떡 않고 // 똥을 빚어 빵을 굽는 // 聖 오마니」(「쇠똥구리」 전문)
쇠똥구리 한 마리가 제 육신보다 훨씬 큰 쇠똥을 굴리고 있는 광경은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한다. 직관적 상상력은 똥이 곧 빵이라는 인식을 낳고 이 인식은 다시 쇠똥구리가 곧 어머니라는 인식으로 확대된다(문학평론가 임우기).
시인의 시는 자연적인 것, 혹은 여성적인 것과 조화와 합일에의 욕망으로 거룩한 모성, 영원한 여성적인 것에 다다르려는 시 의식과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똥을 빚어 빵을 굽는 聖 오마니」라는 시구는 시인의 시 세계 전반을 관류하는 서민성과 거룩한 여성성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거룩한 여성성을 곧잘 바다에 비유하기도 한다. 「목청 좋은 그여자 / 목포의 눈물 같은 / 녹슨 세월을 베고 / 밀물썰물 왔다 가는 / 개펄에 누워 / 엄니 갈매기 몇이 / 곡비(哭婢)처럼 울고 있다」(「폐선(廢船)」 전문)
시집에 담긴 44편의 시들은 소탈하고 담담하며 소박하다. 소탈함은 삶의 고통과 추함에 대한 각성, 아주 작은 목숨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소외된 서민적 삶에 대한 관심이 함께 어울려 빚은 필연적인 산물이다. 탐미적이고 이론적인 시, 세련된 논리로 쓴 잘난 지식인의 시가 난무하는 시대에 김춘추의 시는 그 소박 소탈함으로 오히려 아픈 삶과 소외된 삶을 깊이 껴안는 새로운 시 정신의 탄생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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