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사의 여류시인 1시대에 속하는 원로 홍윤숙(데레사·79) 시인이 신작 시집 「지상의 그 집」(시와시학사/144쪽/7500원)을 펴냈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으니 올해로 시력(詩歷) 57년째. 지난해 「내 안의 광야」에 이은 열 다섯 번 째 시집이다.
시집 출간 소식을 접하고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나 집필 동기를 묻자, 시인은 시집 앞머리에 수록한 서시 「위난(危難)한 시대(時代)의 시인(詩人)의 변(辨)」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제게 있어 시는 진실로 내 인생을 관통한 「한 발의 탄환」이었습니다. 그 탄환으로 인해 앓았고 만신창이가 됐으나, 고통의 기쁨 또한 황홀하게 누릴 수 있었죠. 내가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스스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고, 또 우리 이웃들의 가슴에 작은 등불 하나 전할 수 있었습니다』
팔순을 앞둔 시인은 더는 부연할 말없이 시로 인해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했고, 적막하면서도 충만했었다고 토로했다. 시는 「고맙고 슬프고 아름다운 생애의 친구」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다음 시집을 또 엮게 될 것 같지는 않다』며 『앞으로 혹시 더 쓸 수 있다면 그것은 덤으로 얻어지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삶과 문학을 반추하는 그의 겸양에서 짙은 회한이 묻어 났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번 시집은 「고별사를 쓰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산재한 원고들 140여 편 중 73편을 묶은 것. 주름잡힌 것의 아름다움, 세상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 인생에 대한 평화로운 포옹을 보여주는 시편들이다.
「젊은 날 아름다운 것은/꽃이라 생각했다/세월이 지나면서/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잎이라 생각했다/잎이 잎끼리 모여 뜻을 세워/천둥 번개 장대비에도/반짝이며 매달려 살아 내는 모습 아름다웠다/지금 와 생각하니/꽃도 잎도 아닌/잎이 진 자리의 텅 빈 하늘/자욱이 키를 넘던 초록의 기억을/바람으로 지우며/꿈꾸지 않은 무명 같은 밤/그 벗은 혼의 아름다움을/ 이제 알겠다」(「무제」 전문)
지나온 삶에 대한 차분한 자성(自省)과 자족(自足),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응시하며 「아름다운 그곳」에 다가가려는 시인의 정갈하면서도 구도자 같은 모습이 담겨 있다. 행간 곳곳의 쓸쓸함 가운데 안타까움이 묻어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시인은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를 만져 온 지 57년 그 긴 세월에 겨우 열다섯 권이라니 스스로 게으르고 무능함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아갈 때와 들어갈 때를 분명히 하자고 다짐하면서 고별사를 쓰듯이 이 책을 묶는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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