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오직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그냥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이 담긴 감회로 표현하고 싶네요』
수줍게 미소짓는 얼굴에서 진솔한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 때 이른 장맛비가 대지를 적시던 6월의 마지막 날, 고 장왕록 선생 추모 10주기 행사가 열린 서강대학교 교정에서 이해인(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를 만났다.
『 시 , 산문, 사진이 곁들여진 문집형태의 글 모음집이에요. 편수에 비해 글의 분량은 그리 길거나 많지 않아요』
「마음의 창에 기쁨의 종을 달자」는 부제가 붙은 새 산문집 「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224쪽/9500원)은 그 동안 미발표된 단상과 일간지 등에 실은 종교인 칼럼, 독서일기, 생활시 등 95편을 가려 모아 엮은 것. 2002년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후 다섯번째 신작 산문집이다.
클라우디아 수녀에게 있어서 올해는 특별한 한 해다. 1964년 수도회에 입회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지도 30년이 되어가고, 내년이면 이순(耳順)을 맞는다.
『입회 당시엔 제가 어느날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는 시인이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죠. 1976년 첫 시집을 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아 왔어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문인」으로서 40년을 보낸 감회는 어떨까. 수녀는 이 책의 머리 글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풋풋한 설렘과 뜻모를 두려움을 안고 스무 살에 수도원에 들어섰지만,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친숙하여 수도원의 종소리가 고운 환청으로 들릴 정도입니다』
여러 가지를 기념해 내놓은 특별한 책인 만큼 산문집 곳곳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실렸다. 바로 수녀가 기거하는 부산의 수녀원과 「해인 글방」의 풍경이다. 사진작가 박인숙이 담아 낸 풍경 속에는 「뒷산에서 주워온 솔방울」도 있고 「어머니의 꽃골무」도 있다. 주일에만 사용한다는 「낡은 구두」가 있고, 작은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수녀의 뒷모습」도 있다.
화제를 돌려 최근 세상에 알려진 신창원씨와의 관계를 조심스레 물었다. 수녀는 청송 교도소에 무기수로 복역중인 신창원씨와 2년 전부터 편지를 주고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을 그 분에게 부쳐주면서 편지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30통 정도 주고받았나? 그 분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 옥중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십자가 벽걸이 등을 보내기도 했어요』
신창원씨는 수녀를 「이모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내가 모든 이들에게 이모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클라우디아 수녀는 이 달 중 시집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출판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시집에는 「꽃들이 잔기침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그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 가득한 시 88편이 실린다.
『어린 시절 서울 용산구 청파동 집 꽃밭에 달리아 꽃을 가꾸었던 아버지, 치자꽃잎을 편지에 넣어 보내던 어머니, 봉쇄수녀원에서 엄격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수선화 이야기…. 꽃과 꽃집, 꽃병 등 꽃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에요』
막힘 없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취해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녀 소화 데레사가 제시한 「사랑의 작은 길」을 일상 안에서 기쁘게 실천하고 싶어요. 누가 무얼 부탁할 때까지 기다리지만 말고, 지혜롭고도 은근하게 그 원의를 앞질러 가는 「애덕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불을 꺼도 환하게 나의 방과 마음을 물들이던 은은한 달빛처럼 늘 저와 함께 해주신 사랑과 기도의 시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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