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죽어버려라」의 시인 정호승(프란치스코.54)씨가 자신의 여덟번째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154쪽/6000원)을 펴냈다. 19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후 5년 만이다.
새 시집에는 74편의 시가 실렸다. 이중 25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작이다. 시인은 서문에서 『고백하건대 지난 5년 동안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고 살아,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며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 삶이 그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반성의 세월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정호승씨의 시 세계는 그 동안 슬프면서도 따뜻하고, 섬세하면서도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시집은 그간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순결한 정서와 맑고 아름다운 서정보다는 쓸쓸함과 구슬픔이 앞선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책의 제목인 「이 짧은 시간 동안」은 우리의 인생을 뜻한다. 그는 『짧은 삶을 살면서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무엇을 잃고 살지 않았는지 혼자 묻고 혼자 답을 구했다』고 고백했다.
『마더 데레사 수녀는 모든 인간에게서 신을 본다고 하셨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본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고통받는 우리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간직한 채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실상을 담아내는 데 몰두했다.
시인은 우선 가난하고 버려진 사람들의 아픔에 주목한다. 노숙자, 맹인 소녀, 무릎 없는 걸인, 장례식장 미화원…. 이 많은 고통받는 이들은 시인의 상상력에 힘입어 따뜻하게 위로 받는다.
장례식장 미화원 아주머니는 바닥에 버려진 꽃을 주워먹고 환하게 꽃으로 피어나고(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외침), 한 맹인 소녀는 시각장애인 식물원에서 나무들이 달아준 눈을 얻는다(시각장애인 식물원). 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는 시신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들에게 인사를 받으며(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 나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는다(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이 시집에서 또한 시인은 그 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시인 정희성씨는 이번 시집에 대해 『수채화 같은 그의 시가 그려내는 풍경 속에서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슬픔을 만났다』며 『그의 애정어린 슬픈 눈길이 닿는 순간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물도 짭조름한 시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정호승씨는 시인의 말에서 『내 시가 어미의 따뜻한 등같이 그들의 고통을 위로했으면 한다』며 『타인과 나의 고통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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