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어머니가 있다. 열 여덟 살에 한 살 위였던 남자와 결혼해 9남매를 낳았으며, 그 중 셋을 잃고 3남 3녀를 키웠다. 젊디젊은 새댁의 몸으로 전쟁을 겪었고, 마흔 여덟의 나이에는 남편마저 잃고 하숙을 치며 어렵사리 육남매를 대학까지 보냈다.
여든 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수년 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심하게 처진 눈꺼풀 때문에 앞을 거의 보지 못했다. 고 손복녀(안나.1908∼1987)씨. 바로 작가 최인호(베드로?59)씨의 어머니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5월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을 맞으며 자전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여백/256쪽/9000원)를 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추억과 그리움을 진솔한 글쓰기로 털어놓은 참회의 사모곡(思母曲)이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환갑을 맞는 작가 최씨도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읽고 교정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새삼스러운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살아생전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슬픔이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어머니를 볼 수 없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감옥에 가둬두고, 좋은 옷 입히고 매끼마다 고기반찬에 맛있는 식사를 드리고 있는데 무슨 불평이 많은가, 하고 산 채로 고려장 시키는 고문으로 어머니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형리(刑吏)였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책은 최씨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예순 여덟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모습과, 묵주?흑백사진 등 어머니의 숨결이 배어있는 물건들의 추억을 반추하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그 속에는 나이를 속이며 어머니와 함께 갔던 여자목욕탕의 추억부터, 천하에 음식솜씨 없던 어머니가 부쳐주신 밀전병의 맛이 등장한다. 학창시절 젊고 세련되지 못한 어머니를 창피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일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짐스러워한 데 대한 참회와 용서도 토로한다.
최씨는 책 말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느님이 쓰시는 대본에 항상 나타나는 불변의 배역이며, 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여자는 죽지만 「어머니」는 「창세기」이래로 한 번도 죽지 않은 영원의 모상(母像)』이라고 조심스레 정의 내렸다.
「어머니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며 자신의 가족사와 내밀한 치부까지 드러낸 이 소설은 최인호씨의 개인사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이 시대에 들려주는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책 곳곳에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은 중견 사진작가 구본창(51)씨의 작품이 함께 실려 더욱 가슴 저미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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