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이라기 보다는 독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들린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첫날, 벌써 「푸름」으로 가득한 수도원 뜨락 한켠 「해인 글방」에서 클라우디아 수녀를 만났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잠시 엿본 글방은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책장마다 빼곡이 들어찬 책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도 보기좋게 걸려있다. 각계 지인(知人)들의 메모와 편지들도 눈에 띈다. 이런게 유명세(?)일까.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생활 속의 시와 영성」을 주제로 한 학생들의 리포트도 해인 수녀의 일상을 짐작케 한다.

「사랑할땐 별이 되고」(1997) 이후 5년만에 낸 산문집이다.
몇 년 후면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 하지만 수녀는 『50대 후반의 여유랄까, 나이듦에서 오는 여유와 평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는 이수녀가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진한 연륜과 철학이 묻어난다.
시인에겐 수도자라는 신분 때문인지 기쁨보다는 슬픔을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외롭고 가난한 이들, 방황하는 사람들은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수녀의 시와 산문들에서 위로를 받고, 그들은 끊임없이 편지와 메일을 보내온다. 이렇게 기도와 경험에서 건져올린 일상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읽는 이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전달된다.
특히 학생들, 친구, 수녀원을 방문하거나 편지로 대화하는 이웃들, 가족, 수녀원에 대한 다정한 이야기들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준다.
『글은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전령사예요. 제가 쓰는 편지는 세상과 수도원을 이어주는 다리죠. 시와 편지는 수도자가 세상과 통교하며 이 시대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수녀는 매주 월요일 대학 강단에서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굳이 신앙적으로 다가가지는 않아요. 젊은이들이 선함, 진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다면 된거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이랄까…』 수녀는 그래서 기도와 시를 통해 하느님의 심부름꾼, 작은 도구가 된 것을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수녀가 말하는 삶의 행복은 「작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래서 요즘 수녀는 「일상의 영성」에 대해 자주 묵상한다. 남의 허물을 참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참아내는 것,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한번 더 바라보는 배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을줄 아는 자기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깨닫는다면, 어제도 오늘도 내 생의 마지막 날처럼, 선물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특유의 약간은 빠른 말투와 감성어린 표현들. 막힘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들로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사형수 이야기, 수첩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미 고인이 된 안동의 어느 자매 이야기, 슬픔을 나누려 찾아오는 사람들의 애절한 사연들….
글방을 나서며, 선물로 한아름 받은 책들 속에 사인과 함께 색연필로 그린 꽃잎들이 이채롭다.
『한번 왔으니 또 다녀가라』며 내미는 손에서 따스함이 전해온다.